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39)> 헌종 철종 5 - 민란의 시대

이찬조 2021. 5. 30. 21:47

<조선왕조실록(139)> 헌종 철종 5 - 민란의 시대

 

 

1862년(철종 13년) 2월 29일, 경상 감사 이돈영이 급보를 올렸습니다.

 

- 진주에서 난민들이 병사를 협박하고 인명을 불태워죽였습니다.

 

진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경상 우병사 백낙신은 병영 경비를 착복하고, 이를 백성에게서 거둬 충당하려 했습니다. 이들은 백성이 배당금을 냈더라도 이웃이 내지 못하면 다시 와서 털어갔고, 몰락한 양반들에게도 가차 없이 수탈을 가하였습니다.

 

참다못한 몰락한 양반과 초군(땔감, 약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앞장서서 집회를 열었고, 가혹한 수탈로 벼랑에 몰린 백성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그 수가 불어나면서 군중의 기세가 드높아졌습니다.

 

성난 군중은 그 길로 악질 토호(지방에서 세력을 바탕으로 양반행세를 할 정도로 힘을 과시하는 사람)의 집을 습격해 재산을 빼앗고 불을 질렀으며 우병사 백낙신을 붙잡아 무릎을 꿇게 하였고, 아전들을 타오르는 불길 속에 내던져버렸습니다.

 

그렇게 분노한 백성의 대열이 열흘 넘게 진주 일대를 휩쓸었습니다.

 

놀란 철종은 즉시 박규수를 안핵사(조선후기 지방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의 처분을 위하여 파견한 임시관직)로 급파하여 백성들을 위무하는 한편 백낙신에게 엄한 형신을 가한 후 절도에 유치하고 물간사전(사면받지 못하게 함)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난의 주동자들을 찾아 참수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주 소식은 불씨가 되어 사방으로 날아갔습니다. 진주의 일이 수습되기도 전에 각지에서 백성의 봉기가 이어진 것입니다.

 

경상도 성주, 개령 등지에서 수많은 백성이 일어나 옥문을 부수고 구실아치(아전의 우리말 / 조선시대 관아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는 하급관리) 를 태워 죽였으며 토호의 집을 불살랐습니다.

 

전라도에서는 익산, 함평, 장흥, 부안 등지에서, 충청도에서는 은진, 여산 등지에서 민란이 일어나 백성들이 죽창을 들고 관아로 몰려가 현감을 욕보이고 아전을 때려 죽였으며, 토호의 집을 불사르고, 일부 지역에서는 한 달 가까이 자치 행정을 펼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렇게 3개월여에 걸쳐 삼남 일대는 민란의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조정은 해당되는 도신(도둑질하는 신하를 뜻하고 임금을 속이는 신하), 수령들에게 유배, 등의 벌을 내리고 위무사를 파견해 백성을 다독이는 한편 고을마다 주동자를 잡아 참수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백성들이 무려 35개 지역에서 삼남 일대를 뒤흔든 유례없는 민란을 일으켰고 삼남 일대가 3개월여에 걸쳐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는데도, 지배세력에게 안긴 충격은 그리 크지 못했습니다.

 

이는 더 이상 수탈을 견딜 수 없는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키기는 했으나, 적극적으로 이웃 고을과 연계하려는 움직임도, 통일적으로 묶어내려 한 시도도 없었던, 실상은 개별적이고 고립적인 봉기들의 릴레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아를 습격해 아전, 토호들을 거침없이 죽이면서도 수령은 한 고을에서도 죽이지 않았으니, 이는 당시 백성 인식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 수령이 나쁜 놈이긴 해도 우찌 됐든 나랏님이 임명한 사람 아이가. 하모 수령을 쥑이모 나라에 선전포고 하는 거랑 같은 기라.

 

그러나 최소한 조선 왕조의 체제와 질서가 한계에 직면했음은 분명해졌다 하겠습니다.

 

- 이러다 나라가 망하지.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