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41)> 헌종 철종 7- 아편전쟁과 중국의 굴욕(2)

이찬조 2021. 5. 30. 21:48

<조선왕조실록(141)> 헌종 철종 7

- 아편전쟁과 중국의 굴욕(2)

 

중국의 아편 강경책은 성공한 듯 보였지만, 중국도 임칙서도 영국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영국은 산업혁명과 식민지 경영을 통해 한껏 힘을 키운 상태로서, 중국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 우리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야!

 

영국은 중국의 갑작스런 위협에 못 이겨 아편을 내어 놓기는 했지만, 곧바로 군함 2척만으로 중국 병선 29척 중 26척을 박살내었고, 더 나아가 싱가포르에 주둔하고 있던 군함 16척을 중국으로 발진시키는 강수를 두었습니다.(1840년)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던 중국인의 오랜 확신이 무너지는 아편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주산군도를 손쉽게 함락하고 천진 앞바다까지 북상한 영국 함대에 중국 조정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임칙서를 해임한 중국에 영국은 15개 항의 요구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중국이 2년여를 끌며 자존심을 세우려 하자 1842년 영국은 중국 재침공을 천명하고 홍콩, 아모이 등을 점령한 후 진해, 사포를 거쳐 상해, 진강까지 점령하였습니다.

 

이러다 아예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중국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1842년 8월 양자강의 영국 군함위에서 굴욕적이고도 불평등하기 이를데 없는 내용의 남경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 홍콩할양

- 광동, 상해 등 5개항 개항

- 배상금 2,100만 달러, 영사재판권, 최혜국 대우, 영국 군함 정박권 등등

- 이 외 미국, 프랑스, 스웨덴과도 조약 체결

 

중국은 속절없이 무너져갔습니다. 1850년에는 5만 상자의 아편이 유입되었고, 10년 뒤인 1856년에는 에로호 사건과 프랑스 신부 처형을 빌미로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천진으로 진군했으며, 겁 먹은 중국은 천진조약에 서명했습니다.

- 사신 북경 상주, 원정비용 배상, 내륙통상 허가, 포교의 자유 보장 등

 

이빨 빠진 호랑이 중국은 썩어도 준치라고 천진조약 비준에 시간을 끌며 절치부심, 영국 군함을 공격해 작은 승전을 거두었지만, 화가 난 영국과 프랑스가 이번엔 190척이 넘는 대규모 군함에 2만 4천의 대규모 원정군을 파견하자 중국 황제가 북경을 비우고 도망가는 일까지 발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영국, 프랑스 연합군은 거침없이 진군해 중국과 북경조약을 체결하였고, 이 와중에 러시아는 연해주를 할양 받아 챙겨갔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의 중심을 자처하던 중국은 서구 열강의 완벽한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 보는 사람이 임자

 

그런데 하물며 조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