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44)> 고종 2 - 대원군 정치의 시작

이찬조 2021. 5. 30. 21:51

<조선왕조실록(144)> 고종 2 - 대원군 정치의 시작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조선역사상 유일하게 왕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었으면서 살아 있는 왕의 아버지로, 상당한 기간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이러한 흥선군이 대원군이 되기 전의 모습은 흔히 이렇게 표현됩니다.

 

- 똑똑한 종친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던 안동김씨의 세도 아래 그는 일부러 파락호처럼 살며 몸을 보전했다.

 

먼저 당시 안동김씨는 잘났다 싶은 종친을 죄다 제거하려 들었는가. 일단 사실이 아닌 것으로 봅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철종 13년 종친 이하전이 사약을 받고, 종친 이호가 위리안치된 일이 언급되나, 역모에 이름이 오르게 되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은 조선 종친의 운명인데다가(이 때만의 일이 아니라는 말씀!), 종친이 다친 것은 겨우 이게 다인 것을 생각해 보면, 당시 안동김씨라고 하여 종친들을 마구 죽이는 그런 환경은 아니었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또한 흥선군은 종친으로서 도총관에 오르기도 하고, ‘종친들로 하여금 흥선군을 본받게 하소서’라는 상소가 올라올 정도로 반듯한 처신을 보인 인물이었습니다.

 

다만 왕위 계승이 가시권으로 들어오게 되는 철종 후반기에 들어서는 세도가를 찾아 돈을 빌린다거나 하는 등 야심이 없음을 보여주는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흔히 말하는 ‘상갓집의 개’ 수준의 파락호 생활을 한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흥선대원군의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권력을 잡은 대원군의 첫 번째 과제는 안동김씨의 처리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대원군이 안동김씨에 대해 강한 보복을 한 것처럼 설명이 되는 경우가 많으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대원군의 기본 방침은 기본적으로 ‘세도는 거둬들이되 지위는 유지시켜 함께 간다’는 것이었지 안동김씨에 대한 정치보복이 아니었습니다.

 

- 대원군 시절 10년 동안 피를 본 안동김씨는 단 하나도 없다!!!

 

대원군은 당파, 지역을 따지지 않고 고른 인재 등용을 추구 했고, 그 과정에서 안동김씨의 핵심 김병학은 가장 오래 좌의정, 영의정을 맡으면서 대원군을 보필했고, 김병국도 이조, 호조판서 등의 요직을 맡았습니다.

 

대원군은 이와 같이 대왕대비 조씨와 뜻을 같이 하면서, 아울러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적폐를 해소함과 동시에 안동김씨의 핵심 인사 등을 주요 자리에 포진시켜 우군으로 삼아 재야에서부터 생각해왔던 개혁조치를 과감히 해 나가게 됩니다.

 

- 나를 도울 것인지 내 손에 죽을 것인지 선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