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47)> 고종 5- 병인양요와 신미양요(1)

이찬조 2021. 5. 30. 21:54

<조선왕조실록(147)> 고종 5

- 병인양요와 신미양요(1)

 

종주국으로 받들던 중국도, 바다 건너 일본도 서양 세력의 군사적 힘 앞에 굴복하고 나라의 문을 열었습니다.

 

조선에도 조만간 서양 세력의 위협을 동반한 통상 요구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 어찌할 것인가!

 

대원군과 조선이 선택한 방안은 과거로부터의 전통적 정책인 쇄국정책이었습니다.

 

- 표류해 오는 외국인을 구호해 보내주되, 통상은 절대불가하다. 우리는 오랑캐와 섞이지 않고 예의를 지키며 우리끼리 살아가겠다.

 

대원군의 이러한 정책은 국내 정치에도 그대로 이어져 천주교를 전파하고 신봉하는 프랑스 신부와 조선의 유력자들을 가차 없이 효수하고, 신도들에 대한 색출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고 끈질기게 행해져 천주교 신자 수 천 명이 처형되었습니다.

 

1866년 7월 영국인과 미국인 등이 탄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 와 통상을 요구하다가 조선 백성 7명을 죽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평안 감사 박규수는 제너럴셔면호에 접근해 불을 질러 서양인들을 잡아들였고, 분노한 평양 군민이 이들을 남김 없이 때려죽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조선 조정은 고무되었고 외세에 대한 자신감마저 갖게 되었습니다.

 

(병인양요 1866년)

한편, 조선의 검거 선풍을 피해 중국으로 탈출한 프랑스 신부 리델은 톈진에 있던 프랑스 동양함대 사령관 로즈를 찾아가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고, 분노한 프랑스의 뜻이 청 조정을 통해 조선에 알려졌습니다.

 

- 조선이 선교사 9명과 많은 신도를 살해했으므로 프랑스가 조만간 군사를 일으킬 것이라 했소.

 

이에 조선은 천주교 탄압의 불가피성을 거듭 강조한 후 탄압의 고삐를 더욱 조였습니다.

 

1866년 9월, 중국의 말대로 로즈 제독이 인솔하는 프랑스 군함 3척이 리델 신부와 조선인 신자 3명의 안내로 인천 앞바다에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선교사가 죄 없이 죽었기 때문에 왔다고 하면서, 죽은 프랑스 천주교회 선교사 9명에 갈음하여 조선인 9천 명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

 

이들은 강화도를 손쉽게 점령하더니 문수산성 마저 가볍게 파괴하고 서울 근교 양화진 일대에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조선군을 심하게 얕본 이들은 어디든 거침없이 다니며 약탈을 일삼았고, 급기야 대포도 없이 술과 음식 등 짐들을 꾸려 다소간의 군사만으로 정족산성을 점령하겠다며 여유 있게 진군하였습니다.

 

- 아무리 허접해 보이기로서니 그래도 하나의 ‘나라’인데...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