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56)> 고종 14 - 임오군란(1)

이찬조 2021. 5. 30. 22:05

<조선왕조실록(156)> 고종 14 - 임오군란(1)

 

중전 민씨(후일 명성황후)는 여흥 민씨로 여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꽤 그럴듯 했던 집안은 아비 민치록이 이른 나이에 죽게 되면서 몰락했고, 중전은 8세때부터 서울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중전의 모친은 먼 친척 민승호를 양자로 들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는데, 민승호는 대원군의 부인의 친동생이었습니다.

 

중전은 어렸을 때부터 무척 총명하고 단정하여 주변에 칭찬이 자자했고, 이즈음 부대부인 민씨는 중전을 눈 여겨 보았습니다.

 

결국 중전은 위와 같은 인척관계와 집안에 세도를 부릴 세력이 없다는 점 등이 부각되어 중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전에 본 바와 같이 대원군이 최익현의 소 등을 계기로 10년 권력을 손에 놓고 물러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중전의 역할이 컸습니다.(최익현의 상소를 유도)

 

중전이 이와 같이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맞서게 된 것은 대원군과의 감정적인 대립(외척의 발호를 우려해 애써 중전의 입지를 좁혔다는 것임)이 한 몫 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전은 첫 번째 낳은 아들을 며칠 만에 잃었고, 뒤이어 낳은 공주도 잃었으며, 곧이어 낳은 원자도 허약한데다, 그 이듬해 낳은 대군마저 잃었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과 대원군의 낙마를 유도하면서 고종의 사랑과 신뢰를 독점한 중전은 원자를 위해 대규모 기도회를 수시로 열었는데, 여기에 많은 내탕금이 소요되었습니다.

 

또한 민씨 세도가 시작되면서 매관매직이 다시 기승을 부려 지방에서의 조세 상납 실적이 뚝 떨어졌으며, 개화 관련 정책 추진에도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재정이 고갈되어 조신들의 녹봉 지급이 지체되기 일쑤였고, 군인들에 대한 급료 체불도 매우 잦았습니다.

 

이즈음 조선의 군사 체제가 5군영에서 무위영, 장어영의 2개 영 체제로 바뀌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군인이 소외되고 방치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 우린 뭐야... 잉여인간?

 

거기에다 군인 100명을 선발해 신식군대라 하면서 따로 일본 교관으로부터 훈련을 받게 했는데, 그 대우의 차이가 현저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신식군대와 무위영, 장어영의 군사들에게는 그런대로 급료가 지급되었으나, 방치된 훈련도감 군사들은 무려 13개월이나 급료가 밀리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 알바 뛰고 대리운전하며 살고 있다고...

 

그러던 중 임오년인 1882년(고종 19년) 4월, 훈련도감 군사들에게 1달치 월급이 지급되었습니다.

 

- 한 달 치가 어디야~ 모처럼 아비, 서방 노릇 하겠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