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59)> 고종 17 - 임오군란(4)

이찬조 2021. 5. 30. 22:08

<조선왕조실록(159)> 고종 17 - 임오군란(4)

 

군중들이 대궐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종친과 신하들을 마음대로 때려 죽인 초유의 사태인 군란이 대원군의 등장으로 마침내 수습되었습니다.

 

고종은 중전의 시신도 보지 못한 채 국상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중궁전이 오늘 승하하였다.

 

시신이 없어 왕비의 옷으로 대신해 입관절차를 밟았습니다.

 

중전이 죽었다는 것을 본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대원군은 무슨 생각으로 국상을 선포하였을까. 그것은 대원군의 전략이자 작은 배려였을 것입니다.

 

- 이제 중전은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지. 다시 환궁할 일은 없을 것이니 어디서 목숨이나 부지하시오.

 

다시 권력을 잡은 대원군은 모든 것을 자신이 섭정하던 때로 되돌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개항이 가져 온 새로운 질서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군란 때 공관이 불타고 여럿이 생명을 잃은 일본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일본이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사태를 지켜보던 중국도 즉시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보다 더 가까운 중국이 더 많은 군대를 싣고 일본보다 일찍 조선에 도착했고, 곧이어 일본군이 도착하자 도성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주적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대원군은 이들 군대의 입국을 막을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원군은 그나마 중국군에 보다 호의적이었고, 운현궁으로 찾아 온 중국군 제독을 환대한 후 그들의 초대에도 기꺼이 응했습니다.

 

- 일본이 무력을 동원해 과도한 요구를 한다면 중국군대의 힘을 빌려 견제하리라.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원군을 진영 깊숙이 초대한 중국군은 군란을 조종한 책임을 물어 돌연 대원군을 결박하고 재갈을 물려 중국으로 압송해 가 버렸습니다. 집권 한 달 만의 일입니다.

 

- 조선에 무슨 힘이 있나!

 

조선을 강하게 압박하려던 일본군은 중국의 신속한 개입과 대원군 납치로 닭 쫒던 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 일전을 불사해? 아직은 준비가...

 

일본은 어쩔 수 없이 조선에서의 중국의 주도권을 인정한 가운데, 제물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원하는 바를 얻어냈습니다.

 

- 엄청난 손해배상과 군대 주둔 허용과 조선 전역 탐지 허용 등등

 

한편, 중전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무예별감 홍계훈의 기지로 목숨을 건져 충주까지 피신을 했었는데, 대원군의 피랍으로 다시 환궁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중전이 환궁을 호위한 것은 중국 군대! 대원군을 잡아 간 것도 중국 군대요 호위를 한 것도 중국 군대이니... 기막힌 운명의 교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