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165)> 망국 2 - 잃어버린 10년(2)
임오군란 때 납치된 대원군이 돌아오자 백성들은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고종도 직접 나가 맞았으나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 이런 싸가지
고종은 형식상으로 최대한 극진히 대우하면서도 사실상 가택연금을 시켰습니다.
- 조정 신하는 명을 전하는 것을 제외하고 일체 사적방문을 금한다!
20대의 오만한 위안스카이를 대장으로 한 중국군은 조선 에서의 영향력을 키워갔으나
일본,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이 지켜보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일정부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1884년 이후의 조선 정세는 중국이 주도하는 가운데 일본, 러시아 등과 묘한 세력균형이 이루어진 형세 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세는 1894년까지 10여년 간 이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와 같은 10년은 조선이 힘을 키워 망국을 막을 절호의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화에 대한 의식도 크게 성장했고, 서양이나 일본에 다녀온 사람이 많아 인적자원도 어느 정도 마련 되었습니다.
- 미국엔 국왕이 없고 백성이 뽑은 대통령이 다스린다네?
- 영국에는 땅속으로 철마가 달리더라니까?
개화는 어느덧 피할 수 없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 고종과 조정은 프랑스, 덴마크, 오스트리아와 수교를 하고 여러 근대화작업을 추진했습니다.
- 외국어 교육을 위한 육영공원 설립, 서양 교회 허용, 배재 학당, 이화학당 설립, 근대식 병원(제중원) 설립, 전신가설 (경복궁에 전기가 들어오다!)
이렇게 정변 이후 10여 년 간 겉으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선과 다름이 없었던 일본이 서양 강국의 우위를 인정한 후 나라의 체제를 180도 완전히 바꿔 10여년 만에 그럴듯한 강국이 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합니다.
그러나 조선에는 이 엄중한 세계정세의 변화를 인식하고 나라를 이끌어나갈 개혁 주체인 임금(할줄아는게 없어 그저 중전의 지시나 기다리고 애비는 싫고)과 조정의 비젼이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여전히 중요한 것은 개화가 아니라 왕실의 유지와 사대부의 지배였을 뿐,
부국강병을 하지 않으면 망국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습니다.
아울러, 진정한 개화, 개혁, 부국강병은 강력한 내정 개혁을 동반하는 것일 터인데도 구체제 그대로를 유지, 답습 하였으니, 조선 조정의 개화, 개혁은 부국강병의 길과는 멀어도 아주 먼 것이었습니다.
지배층이 죽어도 내려 놓지 못하는 구체제 특권세상의 균열을 내는 것은 결국 ‘아래’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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