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76)> 망국 13 - 명성황후 시해(1)

이찬조 2021. 6. 19. 12:58
<조선왕조실록(176)> 망국 13 - 명성황후 시해(1)

청일전쟁에서 청의 절대 열세가 확인되고 농민군 패배도 가시화되던 즈음, 일본 정계의 거물 이노우에가 공사로 한국에 부임해 왔습니다.

- 내 손으로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겠도다!
- 그러자면 안으로는 지배의 편의를 위한 제도를 만들고, 밖으로는 일본 외에는 조선에 간섭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지?

이노우에는 청나라와 밀약을 도모한 대원군을 끌어 내리고, 왕비의 정치개입을 막는 한편, 갑신정변 때 일본으로 튀었던 박영효 등 친일 인사로 내각을 구성하였습니다.

이노우에는 고종에게 홍범 14조를 반포하게 하여 지배를 편이하게 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취하고, 청나라를 제압한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는 등 보호국화, 즉 식민지화를 위한 계획을 착착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외부의 반발이 있었으니,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 중국에 침을 흘리고 있던 나라들의 간섭이었습니다.(삼국간섭, 1895년)

- 인간적으로 랴오둥 반도는 돌려줘야 되는 거 아녀?

일본은 고심했지만, 삼국의 요구대로 랴오둥 반도를 돌려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자존심 상하지만, 때가 아니므로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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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간섭과 일본의 후퇴를 눈여겨 본 고종과 왕비는 생각했습니다.

- 러시아가 이렇게 강할 줄 몰랐다. 러시아를 활용한다면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구나.

고종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를 불러 친러 외교를 펼칠 뜻을 전하는 한편, 일본에 대해서는 뚜렷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고종은 친일 실세 박영효의 무리수를 이용해 그를 내보내고, 이완용, 민영환 등 친러 인사들로 내각을 구성하였으며, 일본식 군대인 훈련대를 해산하는 등 급속히 친러적 입장을 견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본국의 입장이 아래와 같았음을 고종은 알지 못했습니다.

-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될 때까지 일본과 충돌할 생각은 없는데?

러시아를 가까이 한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힘없는 조선의 장래가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어쨌든 조선 조정은 러시아로 방향을 틀려했고, 이에 대륙침략을 위해 무조건 조선을 손에 넣을 생각이던 일본이 사이코패스 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 지금 조선을 확실히 잡아 놓지 않으면 곤란하다. 국제여론이고 뭐고 신경 쓰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