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78)> 망국 15 - 명성황후 시해(3)

이찬조 2021. 6. 19. 13:03
<조선왕조실록(178)> 망국 15 - 명성황후 시해(3)

조선 정부가 친일본 성격의 훈련대의 해산을 명령한 사실을 들은 미우라는 거사 날짜를 당일인 10월 8일 새벽으로 바꾸고 용산으로 무장한 낭인들을 집합시켰습니다.

또한 일본군, 순사, 조선인 몇을 규합하여 공덕리 대원군 별장을 찾아 대원군을 경복궁으로 밀어냈습니다.

이 날 새벽 4시경 이미 일본인 교관에게 훈련받은 조선군 약 250~300명 등 일본군 측 병력이 궁궐을 포위한 상태였고, 5시경 대원군이 도착하자 일본군 수비대가 미리 준비한 긴 사다리를 건넸고, 일본 순사들이 담을 넘어 빗장을 풀었습니다.

이어서 일본 낭인들과 부역 조선인들이 광화문을 넘어 경복궁 앞에 이르렀고, 곧 춘생문, 추성문 등으로 일본군과 조선인 근위대 병력이 소리를 지르며 쳐들어와 경복궁을 포위하였습니다.

그 전에, 미국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인 경비대 500여명이 경복궁 입구를 지키고 있었으나, 이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낸 채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훈련대 대장 홍계훈이 시위대 병사와 함께 막아섰으나 현장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일본 군대가 궁궐을 완전히 봉쇄하고, 동원되었던 훈련대 조선인 병사들이 영문을 모르고 있는 사이, 낭인들은 조선의 국모를 찾아 나섰습니다.

경복궁에 명성황후가 없음을 안 일본 낭인들은 황후가 기거하던 경복궁 북쪽인 건청궁으로 가 대오를 맞추어 합문을 포위하고 전당으로 들어가 밀실을 수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궁녀들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명성황후의 처소를 대라며 난폭하게 위협했으나 궁녀들은 두들겨 맞고 목숨을 잃으면서도 신음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이 때 궁내부 대신 이경직이 달려와 앞을 가로막다 그 자리에서 몸이 베어져나가 죽었고, 낭인들은 곧 궁녀와 상궁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누가 황후인지 색출하던 중 변복한 황후를 찾아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낭인들은 궁녀들 사이에 있다가 도망치는 황후를 잡아 넘어뜨린 후 구둣발로 짓밟고 여러 명이 칼로 찔러 기어이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어 궁궐로 들어온 미우라는 황후의 시체를 직접 확인한 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화장을 지시했고, 낭인들은 건청궁 동쪽 녹원 순속에서 장작더미 위에 황후의 시신을 올려놓고 석유를 뿌려 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일본의〈에조 보고서〉에는 낭인들이 황후를 칼로 찌른 후 발가벗겨 국부검사를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고 하는데,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과 110년 전 일입니다.

결국 명성황후는 치욕의 죽음을, 시체를 불살랐다는건 차마 보지 못할 정도로 훼손했다는 것과 증거를 없앨려는 ~~

"나는 조선의 국모다 라며 " 호통하던 이미연이 생각나네?
아! 어찌 조선의 국모를 저렇게~ 정말 뚜껑 열리네 과거로 돌아가서 만일 내가 궁궐수비대였다면 나쁜 일본 개시키들 다 박살을 내버리고 싶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