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77)> 망국13 - 명성황후 시해(2

이찬조 2021. 6. 19. 13:02
<조선왕조실록(177)> 망국
13 - 명성황후 시해(2)

일본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 조선이 일본의 강한 힘을 보고도 러시아를 통해 일본을 견제하려는 등의 정책을 쓰는 것은 왕비의 책략이다. 왕비는 아울러 친일 개화당을 없애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 지금 왕비를 없애지 않으면 조선 보호국화에 문제가 생길 것이며, 왕비를 해쳤다는 국제적 비난은 잔꾀를 써 벗어나거나 그냥 그대로 감수할 수 있다.

일본은 이노우에에서 미우라 고로로 공사를 교체했습니다. 미우라는 일본군 중장 출신으로 조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조선 공사로 왔고, 또 어찌된 일인지 이노우에는 보름 넘게 공관에서 미우라와 함께 지낸 후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미우라가 특수 임무를 띠고 조선에 왔으며, 이노우에가 미우라와 더불어 왕비 시해 작전을 치밀하게 준비하였고, 곧 왕비 시해는 일본 정부의 작전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미우라는 일본 공사관 지하 밀실에서 왕비 시해를 모의했습니다.

미우라의 참모 ‘시로’는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고급 지식인 출신으로, 조선에 나와 있는 일본의 극우 낭인 단체와 긴밀하게 협의하였습니다.

일본 낭인들은 단순한 정치깡패가 아니라 고도로 의식화된 지식인 테러리스트로, 실제로 낭인 중에는 동경제국대학 출신 등 지식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했습니다.

미우라 등은 다음과 같은 음모를 꾸몄습니다.

- 시해의 주역은 일본 낭인이 맡고, 외관상으로는 흥선대원군과 조선인 훈련대의 반란으로 꾸민다.
- 일본인 가담자는 낭인 자객, 일본 수비대 군인, 일본 공사관 순사로 구성한다.(낭인 자객의 수괴는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겐조)
- 거사일은 1895년 10월 10일 새벽으로 하고, 작전명은 ‘여우사냥’으로 한다.

그런데 조선 조정이 예상보다 일찍 일본 훈련대를 해산시키기로 결정하자, 미우라는 해산 결정 당일인 10월 8일, 일을 진행시켰습니다.

일본은 거사에 앞서 대원군을 찾아가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 곧 왕비를 끌어낼 것입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국태공 전하!

이 일로 인해 대원군이 왕비 시해에 협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으나, 정확한 사실 여부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한 나라의 왕비를 대 놓고 살해하려는 일본! 앉아서 당하는 조선!
이것이 100여 년 전 조선의 현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