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80)> 망국 17 - 아관파천(1)

이찬조 2021. 6. 19. 13:08
<조선왕조실록(180)> 망국 17 - 아관파천(1)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김홍집 등 친일 내각의 단발령 실시는 친일내각과 그 배후세력인 일본에 대한 백성들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자극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항쟁이 일어났습니다.

한편, 태평양 진출을 위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해야만 했던 러시아는 일본이 사실상 조선을 지배해 가는 과정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 반일감정 등을 활용해 임금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모신다!
- 일본이 화를 내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와 전쟁을 하려 들지는 못할 것이다!

1896년 2월 11일, 친러파인 이범진, 이완용 등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사전 협의하여 고종이 총애하던 엄상궁을 통해 고종에게 접근한 후, 고종에게 왕실의 안전을 위해 잠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길 것을 종용했습니다.

고종 역시 을미사변 이후 일본에 사실상 감금된 상태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던 데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일본의 독살을 우려해 직접 식사를 만들어 제공하는 등의 성의를 보이자,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하는데 동의를 하였습니다.

파천을 주도한 세력은 이즈음 인천에 와 있던 러시아 수병 150명과 포 1문을 서울로 이동시켰고, 일이 워낙 은밀히 진행된 관계로 일본은 파천의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물론 일본이 알았다 하더라도 지방의 을미의병 진압을 위해 주력군이 이동한 상황이어서, 일본이 러시아군을 제압한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1896년 2월 11일 새벽, 국왕과 왕세자는 극비리에 엄상궁의 가마에 오른 후 경복궁 영추문을 빠져나와 정동에 있던 러시아 공관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엄상궁이 궁궐을 출입할 때 쓰는 가마인지라 파수를 보던 이들에게 특이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 군사들의 철통 경비 아래, 러시아 공사관의 고종은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고종은 새로이 친러 조각을 발표하고, 김홍집, 유길준 등 친일 내각의 핵심들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 썩어도 준치! 어명은 어명!

고종이 아관으로 파천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고, 체포되던 김홍집, 어윤중, 정병하 등은 길거리로 몰려나온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고, 유길준 등은 일본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한편, 아관파천으로 고종과 왕세자가 아관으로 탈출해버리자 일본은 당황했고, 고종을 확보한 러시아와 미국이 득세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이 일로 일본과 러시아는 곧 한바탕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닙니다.
이리 가나 저리 가나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니 나라꼴은 더욱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그나마 나라 살리겠다고 의병을 일으켜서 항쟁을 하는 마당에 왕이라는 사람은 도망만 다니고 한심 그 자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