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90)> 망국 27- 나라가 망하다!(4)

이찬조 2021. 6. 19. 17:14
​<조선왕조실록(190)> 망국 27
- 나라가 망하다!(4)

때는 1907년! 새 황제 순종이 즉위하였습니다. 순종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가 박한 것을 보면 순종은 아비 고종에 여러모로 미치지 못했나 봅니다. 그러나 이름뿐인 황제가 뛰어난들 또 무엇겠습니까.

순종은 전에 본 상궁 출신 엄씨의 아들이자 동생인 영친왕을 황태자로 삼았고, 황태자는 곧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 말이 유학이지, 실상은 인질!

새 황제는 이토 히로부미의 예상대로 일본의 야욕 충족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정미7조약에 따라 주요 자리에 일본인을 직접 배치했습니다.

아울러 친일파로 내각을 채우는 한편, 보안법, 출판법 등으로 일본에 대한 저항을 막고, 삼립법, 동양척식주식회사법 등 한국의 국부를 일본이 뽑아갈 수 있는 모든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가지였습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을 일본에 복속시키는 행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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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침략의 선봉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상대적으로 온건파였다는 평가가 있는데, 을사조약 등 한국이 일본에 합방되는데 일련의 조치를 모두 취한 원흉 중의 원흉인 이 자가 온건파라 불릴 정도라 하는 것은 그만큼 일본에 급진적이고 광폭한 주장을 하는 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일본의 위인으로 추앙 받는 일본인 이토 히로부미! 그러나 한국에는 의사 안중근이 있었습니다.

안중근은 해주 양반가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웠고, 어려서부터 무예와 사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는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고, 국채보상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처음에는 개화지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을사조약 체결, 고종 퇴위, 군대 해산의 과정을 지켜보며, 의식의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 이제 나라가 망한 것과 다름이 없다. 어느 세월에 자강을 한단 말이냐. 직접적인 항쟁이 필요하다!

안중근은 1907년 직접적인 대일항쟁을 위해 연해주로 떠났고, 그 이듬해에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의병을 이끌고 국내로 들어와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1909년에는 11명의 동지들과 손가락을 자르고 피의 맹세를 나누기에 이르렀습니다.
- 나라를 찾는데 목숨을 바친다!(이 때 왼손 넷째 손가락 한 마디를 끊어 결의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안중근이 목숨을 바칠 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