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7 - 태조 6

이찬조 2021. 7. 9. 06:47



*궁예의 몰락 고려 건국의 문이 열리다...

앞에서 최웅을 언급하다보니 왕건이 왕위에 오른 다음의 스토리가 잠깐 나왔습니다. 다시 역사의 바퀴를 되돌려 궁예의 몰락으로 되돌아 가겠습니다.

918년 6월 을묘에 기병장군 홍유, 백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비밀회합을 갖고 왕건의 자택을 방문하였습니다. 먼저 홍유가 왕건 앞으로 나아가 큰절을 하며 “삼한이 분열되고 뭇 도적이 봉기하였을 때 지금의 임금이 분발하고 크게 호통 침으로서 도적들을 쳐 없애고 나라를 건설한지도 벌써 2기가 넘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끝을 잘 맺지도 못하고 포악한 행위가 태심하여 처자를 살육하고 관리들을 죽여 없애니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임금을 원수같이 여기게 되었습니다. 대저 폭군을 폐위하고 현명한 사람을 세우는 것은 천하의 대의이니 공께서는 과거사를 본받아 실행하셔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하고 거병을 권하자,

왕건은 깜짝 놀라 “나는 충의를 신조로 삼고 있는데 비록 왕이 난폭할지언정 어찌 감히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신하가 임금을 징벌하는 것을 혁명이라 하는데 후세 난신들이 구실로 삼을 것을 두려워하는 바이다. 사람들이 이르기를 하루를 임금으로 섬겼으면 종신토록 주상으로 섬긴다고 하였으며 황차 계찰 같은 사람은 나라를 영유하는 것은 나의 절조가 아니라고 하면서 피해가서 농사를 지었는데 내가 어찌 계찰의 절조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왕건의 논리 정연한 반박에도 불구하고 홍유는 주저없이 다시 말하였습니다. “무릇 시기란 만나기 어렵고 놓치기 쉬운 것인데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 것입니다. 해독을 받은 백성들이 밤낮으로 그를 전복할 것을 생각하고 있으며 또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는 자들도 모두 학살당하여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덕망이 있는 자로서 당신위에 설 자가 없는 까닭에 모두들 당신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형편인데 만약 우리의 청을 수락하지 않으신다면 당신이나 우리나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어찌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폭군의 손에 죽겠습니까?”

이때 신혜왕후 유씨가 장중에 나오며 왕건에게 갑옷을 내밀었습니다. 왕건은 홍유, 배현경, 신승겸, 복지겸이 찾아 왔을 때 이미 그들이 속에 품은 뜻을 알고, 채전에 새로 익은 참외가 있을 것인 즉 가져오라고 유씨를 내보냈으나 현명한 아내 유씨는 큰일이 있을 것임을 짐작하고 돌아와 갑옷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대의를 내세우고 폭군을 갈아 내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여 왔던 일입니다. 아녀자인 저도 울분이 솟아오르는데 대장부로서 그저 참고 보고만 있다는 것은 대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하고 왕건에게 손수 갑옷을 입혀주었습니다.

마침내 뜻을 굳힌 왕건은 이들 네 사람을 이끌고 나가니, 이미 장수들이 대기 중이었고, 그를 에워싸고 “왕공께서 의기를 들었다”하고 외치자 이 대열에 참가한 자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이미 궁문에 와서 북을 치며 “왕공 만세”를 부르는 군중의 무리가 만 여명에 가까웠다고 전해집니다.

궁예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아∼ 왕공이 벌써 승리를 얻었으니 내 일은 다 글렀구나!”하고는 급기야 변복을 하고 북문을 통해 도망쳐나갔습니다. 궁예가 도망가자 궁녀들은 궁 안을 깨끗이 치우고 새로운 주인 왕건을 맞아들였습니다.

한편 도망간 궁예는 산속으로 피신하여 이틀 밤을 지낸 후 부양(강원도 평강)까지 흘러갔는데, 배가 고파 보리 이삭을 잘라 훔쳐 먹다가 들켜 이름 모를 백성들에게 도둑으로 몰렸다가 애꾸눈 때문에 도망친 궁예임이 들통 나 군중들에게 끌려 다니며 몰매를 맞고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일부 드라마에서 궁예가 많은 추종자들을 이끌고 왕건의 군대와 맞서 싸우다 패하여 마지막으로 왕건의 술상을 받고 자신을 따르던 부하 장수에게 자신을 죽이도록 하는 장면의 내용이 있었는데, 이는 왕이 죽는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드라마의 흥미를 위하여 꾸민 허구에 불과하고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입니다. 궁예는 혼자서 도망 다니다 애꾸눈 때문에 정체가 탄로나서 성난 백성들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리하여 고려의 창국주, 드디어 태조 왕건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으니 이때가 918년 6월로 왕건의 나이 41세가 되는 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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