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19 ㅡ 정종 1

이찬조 2021. 7. 16. 04:36
고려왕조실록(19) 정종 1

* 왕위에는 올랐으나...

945년 9월 신명순성왕태후 유씨 소생의 왕자 요가 2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지방호족들을 떠안은 채 수립된 통일왕국 고려의 태생적 한계를 어찌하지 못하고 태조는 29명의 왕비를 맞이하여 25명의 왕자를 갖게 되었습니다. 태조의 이러한 처세 때문에 그 후손들은 피를 부르는 왕권 쟁탈전을 벌여야만 하였고, 본인 스스로는 왕위에 관심이 없었더라도 왕자들은 외가의 기대와 강력한 압박 때문에 어쩔 수없이 왕권 쟁탈전에 뛰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앞에서는 왕자 요와 소가 왕권에 도전하는 내용만 기술하였으나 그 외에도 여러 왕자들이 왕권을 넘보다가 죽는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아니므로 생략합니다.

아무튼 정종(왕자 요)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왕위에 오름으로서 바야흐로 형제간의 싸움은 끝나고, 나라가 안정기에 접어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분쟁의 빌미가 될 만한 요소들이 여전히 상주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정종의 즉위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두 인물, 즉 서경에 기반을 갖고 왕식렴과 박수경 사이의 갈등입니다.

왕식렴은 삼중대광(정1품) 평달의 아들로 태조 왕건의 사촌 동생이 되는 사람인데, 918년 태조가 북방민족의 침략에 대비하여 옛 고구려 고토 회복의 전진기지로 삼을 목적으로 황폐해진 서경을 정비할 때 그 책임자가 되어 공을 세웠습니다. 이후 서경을 기반으로 막강한 실력자가 된 그는 정종 즉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한편 박수경은 평산을 본관으로 하는 사람으로 대광위 지윤의 아들이며 태조의 제28비 몽량원부인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일찍이 태조를 섬겨 후백제를 무찔렀고, 개경 인근 평주에서 강력한 군대를 거느린 채 세력을 키워가던 중 왕식렴과 함께 정종의 즉위에 공을 세웠습니다.

잠깐 살펴본 바와 같이 왕식렴과 박수경은 서경과 개경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이들 외에도 개경과 서경을 근거로 살아가는 세력가들과 일반 백성들의 입장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종이 즉위와 함께 개경에서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려 했을 때, 각 지역의 이권에 충실한 사람들은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역대 제왕들은 대부분 즉위 초기에 사회적 안정을 꾀하고자 여러 가지 선정을 배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정종은 서경과 개경을 지지하는 사람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서경 천도를 계획하였을까요.

종종의 즉위는 곧 혜종의 지지 기반이었던 박술희와 왕규의 몰락을 의미합니다. 박술희와 왕규는 개경과 그 인근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정종과 왕식렴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죽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개경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개경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호족들이 정종에게 반감을 품고 있다는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이에 정종은 부랴부랴 서경 천도계획을 세우고 실제 궁궐 건축공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공사에는 막대한 인력과 물자가 투입이 되기 마련인데, 이것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주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서 조달해야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는 듯하였고, 개경에 기반을 둔 많은 사람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요.

훈요십조에도 언급하였듯이 태조가 서경을 중시하였다고는 하지만 고려를 이끌어 가는 거의 모든 인물들과 제도적 장치는 개경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종이 무리하게 역사를 일으켜 백성들의 삶을 궁핍 속으로 몰아넣으니 백성들의 원성이 대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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