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44 - 정종 3

이찬조 2021. 7. 24. 10:08
고려왕조실록 44 - 정종 3
* 새로운 제도들...

정종은 천자수모법에 이어, 과거제도를 재정비하여 1045년에는 악공(樂工)과 각 관아의 말단 에 속하는 잡류(雜類), 오역(五逆), 불충(不忠), 불효한 자와 향(鄕)과 부곡(部曲, 천민부락)인의 자손은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오역은 부모를 죽인 자, 파계하였거나 수행하는 자를 죽인 자, 출가하여 몸에 피를 묻히는 자 등을 말합니다. 또한 재위 마지막 해인 1046년에는 장자상속과 적서의 구별을 법으로 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정종의 재위기간에는 자연재해가 참 많았습니다. 먼저 지진의 기록을 보면 1035년 6월에 개경에 지진이 났고, 8월과 9월에는 개경과 동경(경주)지방 19개 주에서 지진이 났는데 마치 우레와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1036년 6월에는 여러 지방에서 지진이 났고, 동경에서는 3일 만에 멈추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에 지진이 거의 나타나지 않다가 요즘 간혹 약한 지진이 나는 것으로 보도가 되는 것에 비하면 이러한 큰 지진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기만 합니다. 아무튼 이후로도 지진에 관한 기록이 계속 보이기는 합니다만, 그보다는 뭐니 뭐니 해도 제때에 내려주지 않은 비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농사가 나라의 근간이다 보니 극심한 가뭄이 찾아 올 때마다 임금은 하늘을 향해 비를 빌었고, 스스로 반찬의 수를 줄여가며 근신하고 근심에 휩싸였으며 혹이라도 천재지변이 자신의 부덕의 소치가 아닌가, 혹시라도 형벌을 올바로 처리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하고 마음을 졸이며 죄인들을 방면하기도 하였습니다.

임금이란 만인의 위에 군림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나라의 모든 일이 자신의 책임인지라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재위12년만인 젊은 나이 29세에 정종은 병들어 자리에 눕고 맙니다. 자신의 병세를 잘 아는 정종은 5명의 부인에게서 4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두었는데, 자신의 아들이 아닌 동생 휘(徽)를 불러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리고 그날 세상을 하직하게 됩니다.

“내가 왕대의 위업을 이은지가 12년이 되었다. 그동안 천행으로 나라를 무난히 다스렸는데 봄 여름 이래로 노심초사하던 끝에 병을 얻어 백방으로 약을 써도 효능이 없다. 이제 나라의 중책을 덕행이 있는 사람에게 맡기려 한다. 내사령으로 있는 나의 사랑하는 아우는 사람이 어질고 효성이 있으며 공손하고 검박하여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으니 왕위를 물려줌으로서 우리나라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인자하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제간에 우애도 돈독하였고, 식견과 도량이 넓으면서도 영용하고 과단성이 있어 사소한 절차에 구애되는 일이 없었던 임금의 죽음은 모든 백관과 백성들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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