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66 - 의종 5

이찬조 2021. 8. 4. 18:39

고려왕조실록 66 - 의종 5

* 마침내 터져버린 무신의 불만

 

기본적으로 고위직에 오를 수 없는 무신의 처지에 불만이 가득한 무신들로서는 다른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러웠겠지요. 당시의 정치에 대한 백성의 불만이 커질대로 커져있는 점도 유리하다 여겨졌습니다.

 

여기에 의종 21년(1167년)에 일어난 ‘화살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는데, 왕의 행차 도중 좌승선 김돈중의 말이 우연히 어느 무사의 말과 충돌했고 여러마리의 말들도 같이 흥분하여 날뛰게 되자 그 와중에 누군가의 화살통에서 날아간 화살 한 대가 왕의 가마 옆에 떨어진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왕은 이를 암살 미수 사건으로 알고 충격에 빠졌고, 후환이 두려운 김돈중은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래서 화살을 날린 자를 찾느라 한동안 벌집 쑤시듯 했는데, 성과가 없자 왕의 호위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견룡, 순검, 지유들 중 14명을 귀양을 보내 버립니다.

 

이러한 조치는 무신들에게는 지금은 왕을 자기를 호위하는 우리를 보살펴준다고 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는 불안감을 갖게 하였고, 여기에 그칠 줄 모르는 왕의 나들이에 호위하는 병력이 늘게 되자 병사들이 먹을 밥이나 잠을 잘 숙소가 모자라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불만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쿠데타 일보 직전까지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왕이 시도 때도 없이 나들이를 하면서 경치 좋은 곳에 이를 때마다 행차를 멈추고 가까이 총애하는 신하들과 술과 글에 취하여 떠날 줄을 모르니, 호송하던 장군과 군사들의 피곤은 그야말로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1170년 4월 신록이 한창 짙어질 무렵 임금이 화평재에 행차하였습니다. 호송군사들은 피곤함과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이때 정중부가 호위 총책임자로 있었는데 오줌이 마려워 밖으로 나왔을 때 중간 장교인 이의방과 이고가 뒤따라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문신들은 마음껏 취하고 배불리 먹으며 놀아대는데 우리 무신들은 이렇게 주리고 피곤한데도 계속 참아내야만 한다는 말입니까?”

 

세 사람은 임금이 교외에 있는 보현원에 행차할 때 거사하기로 의기투합을 하였습니다.

 

그해 8월, 임금이 보현원에 행차하려고 궁궐에서 나와 오문(五門)에 이르렀을 때, 임금은 말을 멈추고 술잔치를 벌리게 됩니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며 문득 말했습니다.

 

“여기야 말로 참으로 근사한 장소로구나. 군사들 연습시킬 만한 곳이 여기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것 같구나”

 

그는 수박시합을 명하였습니다. 사실 임금은 무신들의 불평을 알고 놀이를 시켜 후한 상을 내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늙은 대장군 이소응이 어느 젊은 군사와 맞잡고 경기를 하다가 이기지 못하자 달아났습니다.

 

그때 문관인 한뢰가 갑자기 앞으로 나오더니 이소응을 불러 세우고는 빰을 쳐서 뜰 아래로 떨어뜨려 버립니다.

 

임금과 여러 문신들은 이 모습을 보고 손뼉을 치며 웃었고, 한 무리의 다른 신하들은 이소응에게 욕을 해댔습니다. 정중부가 나서서 한뢰에게 소리쳤습니다.

 

“이소응이 비록 무관이지만 벼슬이 3품인데 어찌 이다지 욕을 심하게 하는가?”

 

임금은 정중부가 나서 강력하게 항의하자 그를 달래며 진정시켰으나, 그동안 불만에 쌓여있던 장군부터 병사까지 ‘더는 못 참겠다.’라는 마음이 끓어 넘치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그날 밤 마침내 무신들이 무지막지하게 칼을 휘둘러 대기 시작하니 드디어 무신들의 천하가 시작된 것입니다.

 

저녁 무렵 보현원에 이르렀을 때 이고와 이의방은 순검군에 명하여 보현원 문 안으로 들어오는 문관과 내시들을 닥치는 대로 쳐 죽입니다.

 

반군의 선발대는 궁궐에 들어와 숙직하는 벼슬아치들을 찾아내 닥치는 대로 죽여 버립니다.

 

뒤이어 이고와 이의방이 이끄는 순검군이 들이닥쳐 태자궁 등을 휩쓸어 버립니다.

 

정중부는 보현원을 샅샅히 다 뒤져서 낮에 대장군 이소응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한뢰를 마루 밑에서 찾아내 발밑에 깔고 분풀이를 해댑니다.

 

"장군, 사 사 살려 주시오." 한뢰가 다급하게 정중부에게 매달렸습니다.

 

“이놈, 한뢰야, 네가 그렇게 무신을 무시하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더냐? 여봐라, 뭣을 하는 게야. 문관은 씨를 남기지 말아라!"

 

병사들은 한뢰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사지를 자르고 배를 갈라 처참하게 죽여 버립니다.

 

무신들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문신 50여명을 찾아내 죽여 버렸는데 계속되는 살상에 무신들의 칼날에는 붉은 피가 마를 겨를이 없었습니다.

 

의종은 벌벌 떨기만 하다가 정중부를 상장군에서 대장군으로 이고와 이의방을 중낭장으로 승진시켰으며, 나머지 무관들도 한 계급씩 승진시켜 무신집권을 공식 승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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