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109 - 충숙왕 3

이찬조 2021. 9. 1. 21:19

고려왕조실록 109 - 충숙왕 3

- 충숙왕의 귀국과 사망

 

 

원나라 왕 영종이 죽고 태정이 왕위에 오른 것은 1323년 9월 무술일이었습니다. 원나라에 잡혀있던 충숙왕에게도 기회가 찾아와 고려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집니다. 이번엔 고려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아 유배 가 있던 충선왕을 소환하는 동시에 충숙왕에게 국왕의 인장을 돌려 주며 고려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때 충숙왕은 또 원나라 위왕 아목가의 딸 조국장 공주를 새로운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고 이를 통해 원나라의 신임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된 충숙왕은 고려로 돌아오자마자 그간 자리를 비워 실추될 대로 실추된 임금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다시 왕권을 위협받게 되는데, 이는 원나라와 관계를 맺은 이래 역대의 왕들이 늘 그래 왔듯이 원나라 조국장 공주가 1235년 10월 아들을 생산하면서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자 왕의 지위 역시 흔들리면서 고난이 시작되게 됩니다.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이었기에 원나라 공주 출신 왕비의 지원이 없이는 제대로 왕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 뒤에는 모든 음모의 중심에 삼양왕 왕고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왕고의 심복들이 원나라 중서성에 충숙왕은 이제 눈이 먼데다가 귀까지 먹어

왕위에 계속 있기는 부적합하다고 허위사실을 고해바친 것입니다. 그러나 얼토당토않은 거짓은 곧 백일하에 드러나고 충숙왕은 가까스로 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거듭되는 왕고의 무고와 고단한 임금으로서의 업무가 충숙왕을 지치게 만들었던지  충숙왕은 1330년 2월 초하루 세자 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맙니다. 편히 쉬고 싶었던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충숙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충혜왕은 황음무도(荒淫無道)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원나라에서 충혜왕을 폐위시키자, 충숙왕은 어쩔 수 없이 복귀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가 1332년 2월 갑자일이였습니다.

 

정치 일선으로 돌아온 충숙왕은 이후 원나라의 무리한 조공을 삭감시키고 공녀의 선발을 중지토록 하는 청원을 하는 등 치세에 힘을 쏟았으나 원나라의 입조 명령을 받고 체류하다 돌아온 뒤로는 사냥과 유흥에 몰두하며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신하들은 물론이고 원나라의 사신들까지도 좀처럼 만나 주지를 않는 등 대인기피증이 심화되어 정신병자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다가 1339년 3월 계미일에 침전에서 숨진 채 발견됩니다.

 

고려의 역대 왕들 중에서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의 4대 부자간에는 서로의 갈등과 반목이 극심하여 원나라에 소환되어서까지 서로 삿대질까지 하며 시비하여  후세에 웃음거리를 남겨 놓았다는 오명을 씻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