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116 - 충정왕 2

이찬조 2021. 10. 30. 06:41

고려왕조실록 116 - 충정왕 2

- 왜구의 침입과 어린 왕의 죽음

 

 

충정왕이 즉위한 후 왜구들이 고려로 몰려와 약탈을 시작하는데 그때가 1350년 2월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왜구 300명을 죽이는 등 쉽사리 그들을 물리쳤으나, 갈수록 왜구들이 빈번하게 침입을 해오자 고려사회는 뒤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워낙 당시 사회가 불안정한 상황이었기에 왜구들이 이틈을 타 대거 몰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때마침 고려내부의 모순을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데, 이는 원나라의 총애를 믿고 고려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내시들의 악행을 폭로하는 방을 써 붙였는데, 그 방을 써 붙인 사람이 다름 아닌 경상도 안렴사로 임명된 최용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덕녕 공주가 이를 알고 그를 파면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대소 관료부터 시작하여 심지어는 내시들까지도 자신들의 이권에 혈안이 되어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을 비웃듯, 왜구들은 1350년 5월과 6월 이듬해 8월에 걸쳐 고려를 거듭 침략했습니다.

 

또한 1351년 8월에는 왜선 130여척이 자연, 삼목 두 섬에 상륙하여 민가를 불사르고 초토화 시켜버리자, 조정에서는 만호 언호를 서북면에, 만호 인당과 전말직 이권을 서가에 주둔시키고 왜구가 육지에 상륙하지 못하도록 바다로 나가서 왜구를 치라고 명령을 하였는데 이권이라는 자가 돌아와 이렇게 고하며 출전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장수가 아닐뿐더러 또 녹봉도 받지 않고 있는 터이오니 명령을 거행하지 못하겠습니다.”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작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려가 돌이킬 수없는 파국을 향해 치달아가는 모습을 보다 못한 원나라에서 마침내 충정왕을 폐위시키기로 결정하고 1351년 10월 강릉대군 왕기를 국왕으로 책봉하니 이가 곧 제31대 공민왕입니다.

 

10월 임오일, 원나라 왕의 명령으로 고려에 온 단사관 완자불화는 모든 창고와 궁실을 봉인하고 국새를 회수하여 원나라로 돌아갑니다.

 

왕위에서 물러난 충정왕은 강화로 유배 되었는데 공민왕 원년 3월 신해일에 사사되고 마니 재위 2년3개월에 향년 14세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