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122 - 우왕 1

이찬조 2021. 10. 30. 06:48

고려왕조실록 122 - 우왕 1

- 아들이 왕이 돠고 그 아들에 죽은 여자

 

364년 공민왕은 신돈과 함께 득남을 위한 불공을 드리러 가게 되는데 자연스레 신돈의 집에 자주 묵게 됩니다. 그러던 중 신돈의 첩인 기생 반야에게 눈독을 들이게 되고, 중놈이 첩까지 거느리고 ---,  그로부터 1년 후 반야는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 아이가 바로 공민왕의 아들로 전해지는 우왕입니다. 부하의 여자를 자기가 쓱싹한 것이지요. 뭐 하긴 임금은 만백성의 주인이니까 내꺼 내 맘대로 한다는 데야 할 말은 없지만---

 

공민왕은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자 무척 기뻐합니다. 평소 여색에는 별로였다(노국공주 사망 전에도)고 하는데 부성애만은 남달랐다고 합니다. 아들 '우'에게 매번 장난감을 사다주며 아버지로써 사랑을 듬뿍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이런 공민왕에게 한 가지 고민이 생기는데 아들 '우'의 어머니를 누구로 할지입니다. 반야를 생모로 얘기하자니 주민등록등본에 신돈의 첩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걸렸던 것입니다. 고민 고민하던 공민왕의 뇌리에 이미 사망한 궁인 '한씨' 를 떠올리게 되고, 공민왕은 '우'를 궁으로 데려오면서 “이 아이는 궁인 한씨가 낳은 내 아들이다” 하고 공표하고 태자로 책봉하기에 이릅니다.

 

공민왕이 최만생과 자제위 홍륜 등에게 시해 당하자 이인임은 이튿날 바로 왕우를 왕으로 옹립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명덕 태후를 비롯한 종친들은 종친 중에서 왕을 골라 세워야 한다고 맞서고 나서자, 왕위를 놓고 세력 대결이 한판 벌어질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종친 중 영녕군 왕유와 왕인덕이 이인임의 의사에 동조하고 나섰습니다.

 

‘선왕께서 대군(왕우)로 하여금 뒤를 잇고자 하셨는데 이분을 버리고 누구를 구한단 말인가?’

이리하여 가까스로 왕우는 공민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고려 제32대왕 우왕으로 당시 나이 10세였습니다. 우왕이 즉위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이인임은 거의 왕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행사하며 마음대로 국사를 농단하였는데, 이인임은 그때 고려에 머물고 있던 명나라의 사신 채빈을 살해해 버립니다. 

 

당시 중국 대륙에는 새로운 왕조 명나라가 들어서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이인임은 채빈이 공민왕 시해사건을 명나라 조정에 보고하여 재상인 자신에게 그 책임이 돌아올까 염려한 까닭이었습니다.

이러한 끔직한 사신 살해 사건을 저질러 버린 이인임은 구원책으로 그간 멀리하였던 원나라와의 관계 복원을 시도하게 됩니다.

 

우왕이 즉위하고 나서 2년 뒤 쯤에 생모인 반야가 우왕을 찾아와 내가 너의 생모인데 나를 이렇게 푸대접 하냐며 우왕에게 따지자, 우왕은 반야를 강물에 던져 죽여 버리도록 명합니다. 우왕 역시 자기 부친인 공민왕을 닮아서인지 이처럼 성질이 괴팍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