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황산 090808

이찬조 2009. 12. 1. 14:49

황산(중국)

 



1. 일정 : 2009.8.8(토) ~ 8.13 (5박 6일)


2. 코스 : 인천 제2국제여객선터미널(8.8. 13:00집결, 15:00출항) - 연운항(검진 및 세관통과) - 홍택호(만찬) - 남경 통과 - 퉁링 - 황산 - 자광각 - 옥병루 - 영객송 - 오어봉 - 천해(오찬) - 보선교 - 서해대협곡(통제) - 천해 - 광명정 - 북해빈관(숙박) - 몽생필화 - 백아령 - 운곡사 - 구룡폭포 - 동대문 - 황산시(오찬) - 남경(만찬) - 시내관광 1시간 - 회안(주은래기념관) - 구화산휴게소 - 연운항 - 평택항


3. 참석자 : 산수산악회에서 모집한 26명


4. 산행기

한번즘 가보고 싶었던 산 황산, 3일 전부터 무엇을 볼 것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준비물도 점검하여 중국지도, 행정구역도, 황산지도, 거리 표기된 황산지도,  비옷, 우산, 부채 등등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준비물과 먹거리, 의약품, 여벌의류, 카메라, 스틱, 특히 모든 물품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태풍의 영향을 고려하여서 챙긴다.


토요일 오전 9시 집을 나서 동인천역에 도착하니 11시가 약간 지났다. 자유공원에 올라 산책을 하다 가죽잠바 아저씨를 바라보니 6.25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점점 잊혀져 가는 6.25, 요즘 젊은이들은 기억이나 하려나.....


입국장안에서 기다리다가 13:20‘쯤에 가이드 여행도령의 설명이 있었다. 본인은 이번에는 못 따라가고 곽성문씨를 팀장으로 하여 다녀오도록 안내하여 주신다. 여행사 가이드 설명을 듣고 현지에 도착하면 현지 가이드가 있으니 염려할 것 없다며 설명하고는 출국장을 나오자 그분들은 되돌아갔다.


세관을 통과하여 승선하자 선표에 방 배정 번호가 있어 찾았더니 제일 연장자인 분과 한방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황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천항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려고 갑판위로 올라갔는데 15:10‘쯤 출항한 배는 도크 안에서 거의 1시간을 가다렸다 도크를 빠져나온다. 배안의 모든 시설을 확인 점검하고, 특실을 구경하였다. 비교적 깨끗하다.

인천에서 연운항까지 거리는 396M이라 되어 있다. 한편 연운항 평택항은 360M이라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평택항이 좀더 가까운 거리란 뜻인가?

올 때 배에는 연운항과 평택이 396마일로 표시됨.


건설중인 인천대교가 멀어져가고 바다의 옹기종기 섬들이 다가왔다가 사라져가기를 반복하는데 알만한 섬 두개는 알 것 같다. 하나는 등대섬인 팔미도, 다른 하나는 인천앞바다 호룡곡산으로 유명한 무의도 이다. 그리고 섬 한두 개를 벗어나자 섬은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는 해파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배에서 볼 수 있는 생물은 파리와 잠자리였다. 인천을 떠나온지 3시간정도까지는 갈매기도 보인다. 그러나 그 후에는 배도 보이지 않고 수평선이 전부였다. 어두워졌어도 좁은 방에 있기보다는 갑판이 훨씬 시원하고 좋았다.


저녁식사시간는 맨 마지막으로 앞사람들이 먹던 밥에다 보충만하여 담겨있는 모습이다. 식사 후 곽팀장님은 식사 책임자에게 한국의 윤리로는 연장자가우선하여 식사를 하는 법인데 제일 연장자인 우리 팀이 맨 후자인가 하여 항의하여 다음날 아침을 제일 먼저 먹도록 하였단다.


  처음으로 좁은 침대에서 잠을 청하려니 잠도 잘 오지 않고, 2층 침대인데 침대에 오르기 힘들어 의자를 놓고 올라갔다. 1층의 벽에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등받이가 있기도 하였다. 우리 영해가 끝날 즈음에 핸드폰을 시험해 본다. 우리영해에서는 우리나라 시간이 정확하게 나오는데 로밍을 하지 않은 핸드폰은 12:00만 나온다. 잠이 들지 않아 새벽 세시가 되어도 도통 잠이 들지 않는다.

우리가 탄 ‘자옥란’호에서 소주는 2천원, 커피는 300원, 물은 500원 정도다.


2009. 8.9.(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기 위하여 갑판에 올랐다. 해보다 구름이 먼저 피어올라 태양을 붉은 빛을 잠시 보이다 만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갑판쪽으로 나와서 쉬고 있는데 작전고 이경구 교장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인사를 드렸더니 교감선생님과 몇몇 분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되돌아왔다. 방이 덥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교장선생님은 신종플루 때문에 온도를 낮게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우리나라 지도책에는 연운항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청도 조금 남쪽에 강소성(江蘇省) 렌윈강이라고 되어 있는 곳이 연운항이다.

이번여행을 계기로 양자강과 대운하(황하-양자강-항주), 장가계 원가계의 위치 등 몇 가지를 찾아본다.

한국보다 중국 바다에는 해파리가 적게 보기고, 중국 쪽은 녹조현상이 있었다.

 우리가 연운항에 도착하니 14:40‘이 되었다. 항만에 가까워 오자 우리일행은 하선준비를 하여 대기하였으나 정확하게 두 시간을 기다렸다. 17:10‘ 버스에 오르는데 우리가 타는 차는 짐칸도 없다. 에어컨이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운전기사 위에만 선풍기가 서서히 돌고 있었다.


세관에 와서 귀에 체온을 재는 것이다. 우리팀 중 여성 1명이 열이 있어 재검을 하려 갔단다. 그리고는 짐을 검역하는데, 사가지고 온 청도복숭아 등 과일을 압수당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먹겠다고 달랬더니 그것도 안 된단다. 그 맛있는 과일은 내일 산에 올라서 나누려고 했는데 맛도 못보고... 아까왔다.

과일을 들어 내고나니 배낭은 한결 가벼웠고, 마른 음식물은 통과 되었다.

혹시 중국돈 잔돈이 쓰일 일이 있을지 몰라 박카스 한 병사고 10위엔 짜리로 받았다. 박카스는 우리돈 1000원이었다.(중국 세관에서)

동료들이 모두 검역을 마친 시간은 중국시간 7시가 되어서였다.


 산수산악회 피킷을 들고 있던 분이 자신은 ‘김명호’ 라며 소개하고, 이곳에서 주의사항 여권주의, 가방은 앞으로 맬 것, 줄에서 이탈하지 말 것 등등이다.


연운항에서 26명을 확인한 버스는 남경을 향하여 달리는데 시내에서는 시속 80, 고속도로는 100을 반드시 지켰다.


가이드의 중국설명은 이러했다.

중국이 검역이 심한 것은 예전의 쌰스의 영향이 크다. 그때 한국의 김치가 중국에서 없어 못 팔았다. 맛이 있어서가 아니라 쌰스에 강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이번에 신종 인플루가 돌고 있어 검역이 심한데 37.5° 이상이면 무조건 재심이란다.


중국은 현재 23개성, 5개자치구, 3개 직할시가 있다.

인구는 대충 13억이라고 하는데, 아들을 낳기 위해 여아는 호적하지 않는 남아선호사상이 있어 호적으로 모두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 물가는 싸지 않고, 특히 강소성은 한국과 버금간다. 새로 건축하는 아파트는 1억~3억정도 한다고 한다. 연운항시는 중소도시로 430만명 정도 되고, 부두지역만 60만 정도 된다고 한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의 출생지역이기도 하며,

서유기의 작가인 신괴의 모친이 눈이 멀어 신괴가 뒷산 동굴에 놀러갔다가 서유기 1집을 내게 됨/ 삼장법사 등의 이야기를 모친에게 읽어 드리면 재미있어 함


연운항을 앞으로 중국 제1부두를 건설 계획(현재는 10대 부두)으로 300억 위안 투자계획임. 잘나가는 부두는 청도, 대련, 상해, 항주 등임

연운항은 실크로드의 원점이 됨. 한국기업은 40여개 들어와 있음.

300개 기업이 들어올 수 있도록 2년 전부터 개발됨. 

중국은 토지는 국가소유이고 국민은 사용권만 주어짐. 따라서 개발하면 땅은 당연히 제공하여야 함, 발전 속도는 사회주의라서 빠르고, 종교, 언론 자유 있음.

지방주의가 심함. 북경에서는 정치를 논하지 말고, 상해에서는 지갑을 꺼내지 말라.

중국의 석유회사는 2개가 있음 중국석유와 중국석화 임/ 가격인상은 정부와 협의하여 인상함. 사회주의지만 갈수록 물가조절이 어려움.


중국인들은 월 100만원 수입이 있을 경우, 5만원 정도로 생활하고 95만원은 저축또는 금을 산다. 재산을 모아 자녀에게 물려준다. 자녀는 클럽, 술 등에 빠져 흥청거리기도 한다. 삼서성의 경우 촛불 또는 등잔을 쓰고 있고, 감자, 고구마로 주식, 양자강 남쪽은 난방시설이 없으며, 동북쪽은 난방과 보일러 시설이 있음.  

한국은 보일러, 핸드폰, 인터넷에서 세계 1위로 그들은 알고 있었음.


화과산은 입장료 50원(우리 돈 10,000원)-동굴과 과일이 많음

중국 명나라의 장편 신괴(神怪) 소설 ‘서유기(西游记)’에 나오는 손오공(孙悟空)의 고향 ‘화과산(花果山)’은 과연 어딜까? 중국의 각 지방마다 그럴 듯한 산만 있으면 이곳이 바로 손오공의 고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터넷 자료)


중국은 버스를 타면 두 시간은 기본, 10시간은 가깝네요. 너무 싼 것은 조심하고, 물은 끓여서 먹도록 하자고 한다.

황산은 280/365일은 비가 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행하자. 산행시간이 많으면 볼 것이 많고, 시간은 7~8시간 정도 예상함

연운항을 벗어날 즈음인 19:15‘에 남경 310㎞라고 이정표가 나온다.

난징(남경)이나 퉁링에서는 한국 돈 사절. 산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저장성 차마고도를 한번쯤 가볼 것을 권한다.


※ 차마고도란

실크로드보다 200년이나 앞서 1세기경 만들어진 차마고도(茶馬古道). 중국 서남부의 특산물인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형성된 인류 최고(最古)의 무역교역로다. 길이 5,000㎞, 평균고도 4,000m에 달하는 이 고대 무역로의 흔적이 있다. 차마고도의 시발점인 중국 윈난성의 성도 쿤밍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이 처음 찾은 곳은 쿤밍 시내의 '소수민족 박물관'. 차마고도 일대에 살고 있는 두롱족, 지누족 등 26개 소수민족의 의복, 건축물, 풍습이 재현돼 있는 테마파크다.


시장하여 홍택호(중국에서 4번째 큰 담수호)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저녁식사는 민물가재요리 등이었는데 맨손으로 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니 22:10이다. 고속도로의 이정표는 10㎞ 마다 붙어 있었다. 연운항에서부터 남경까지는 모두 평야인데 고속도로 양 옆에는 포플라를 이중 삼중으로 심어 나중에는 종이 원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중국의 휴지는 우리보다 질이 훨씬 좋았다. 가는 길에 자그마한 도시인 부산이 있었는데 한자로 우리나라 부산과 똑 같이 쓰고 있으며 부산휴게소에 들려 주유 및 휴식을 잠시 취하고 23:05‘에 출발하였다. 23:30분이 지나니 안개비가 내린다. 장강2교를 지나는데 장강대교모습은 비속에서 희미하게 보인다. 우리가 탄 버스는 금용객차로 30인승이다. 숙소는 퉁링시(銅陵)(동을 생산하던 광산이 있었던 곳)에 있는 ’화정지성‘호텔이란 곳이었다. 그런대로 쉴만했다. 너무 늦어서 새벽 2:10’ 도착, 세시에 잠들었다.


8.10(월). 비(여기서부터는 중국시간임)

05:30 모닝콜 하기로 하였는데 없었다. 그럼에도 모두 시간에 맞추어 6:10‘ 식사를 하였다. 07:00출발하여 09:00 황산입구, 09:10’ 버스를 갈아타고 케이불카 출발지인 자광각 앞으로 왔다. 등산준비를 10분만에 완료하고 09:30 6인승 케이불카를 탔다. 거리는 2㎞가 조금 넘는 것 같다. 케이블카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개비 속의 등산에 만족하지 못한 표정들이다. 비가 올 때 등산화 보호를 위하여 비닐봉지로 양말에서 신발까지 살짝 덮어 놓으면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프로들은 준비를 완료하였다. 케이불카 도착점인 옥병루에서는 20분쯤 좌측으로 이동하는데 원숭이 한 마리가 나와 구경거리가 되었고, 비가 오는데도 오가는 길이 비좁을 정도로 관광객이 많았다. 20분쯤 이동하니 그 유명한 영객송이 나온다. 비가 와서 사진도 찍기 어렵고, 날씨가 추웠다. 천도봉을 생략하고 되돌아 옥병루를 거쳐 오어봉으로 향한다. 가는 길 양 옆에는 위험한 곳은 돌로서 울타리를 치고 있는데 끼워서 연결하는 방식으로 기묘하게 만들어 두었고 쓰레기통도 인상적이었다. 군데군데 쓰레기통을 두고 있어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었다. 조금 더가니 12:00 천해 백운산장(그 곳을 안내하는 표지판에 “힌 구름 산장”/오타아님)로 오찬장이다. 빗물을 좀 털어내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비닐봉지에 비옷을 담아 지하로 내려가서 식사를 하였다. 음식은 맛이 있었고, 음식보다는 옷 말리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화장실도 인기였다.

점심식사후 13:00 우리는 서해대협곡을 향하여 갔다. 25분 후 마침 보선교까지는 갔는데 서해대협곡 간판 앞에 오니 출입을 막고 통제하고 있었다. 바위를 뚫어 길을 내고 절벽과 절벽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아 보선교라 하였다. 바위 안에 길은 홈이 패여 다리를 다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가이드가 넘어질 뻔 하였다.

전원 후퇴하여 천해 백운산장에서 좀 쉬었다. 하는 수 없이 다음날 코스인 광명정에서 잠시 쉬었다가 비래석을 생략하고 곧장 북해빈관으로 왔다. 짙은 안개구름 속에 거의 다 가리고 전방 몇 미터만 볼 수 있었다.  15:45‘에 북해빈관에 도착하여 좀 쉬었다. 잠을 못자고 산행을 하여 모두 피곤한 기색이다. 좀 씻고 등산화와 옷을 말리다가 18:40‘에 로비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식사는 대체로 잘나왔다. 19:30 식사후 나오는 길에 맛사지를 받겠느냐는 제의가 있어 얼마냐고 물었더니 150원(30,000원)이란다. 깍아서 100원에 하되 가이드에게는 비밀로 하여 달란다. 발 맛사지를 받는데 50‘정도 걸렸다. 아프지 않던 다리가 더 아파온다. 방에 돌아와서도 빨래 건조작업이 계속되었다.


북해빈관은 해발 1630m에 건축되었고, 1958년 시공하였으며, 50년대말 등소평, 강택민, 양상곤, 이붕, 주용기 등이 다녀간 흔적을 남겨두고 있었다.


2009.8.11(화) 비.

05:00 모닝콜/ 06:20 조식/ 07:20 로비집결 하기로 하고 밤새 젖은 옷을 말리고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밤을 보내는 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출발 전에 서해대협곡은 통제되었으니 다른 볼거리를 하나 찾아보고 가자고 하였더니 3만원을 더 내고 구룡폭포와 남경의 공자가 교육하던 현장을 둘러보기로 하여 그쪽을 선택하였다. 7:50분쯤에야 북해빈관을 나서며 잠바를 입고 출발하였다. 방수효과가 조금 있으려니와 날씨가 추웠다. 북해빈관을 나서 우측으로 5분정도 오니 아래쪽에 전망대가 있었는데 이것이 “몽필생화”라고 한다.  계단을 약간 올라오니 호텔운영에 필요한 물품이 올라오는데 한명이 아니라 부대규모이다. 1인당 80㎏이 기본이고, 많으면 120㎏까지 메고 올라온단다. 너무 힘들어 보였다. 어제는 짐꾼들이 삼각팬티 차림이었는데 오늘은 아래쪽 반추리닝 차림이었다. 그것도 1주에 2~3회정도하면 일거리가 없다고 알려준다.  호텔의 모든 물품이 등짐으로 올라온다.


얼마쯤 오니 운곡사 케이불카를 이용할 분들과 도보로 하산할 부류가 나뉘었는데 6명이 케이불카를 이용하고 20명은 도보로 하산하였다. 백아령에서 운곡사까지 6.5㎞에 오르는데 2:00 정도 소요되고 하산 길은 1:30정도 소요된다. 하산 길은 좌측은 산언덕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우측은 계곡 넘어 깍아지른 산봉우리 봉우리마다 기암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비가 와서 어슴푸레 보인다. 약 두 시간 정도 내려오니 운곡사가 나오는데 그길로 올라오는 관광객이 끝이 없었다. 운곡사를 다와 갈 즈음에는 대밭이 나오는데 굵은 대가 있어 봄에 죽순의 산실임을 알 수 있었다. 운곡사(11:00)에 와서 볼 일을 보고 좀 쉬면서 준비해간 견과류를 한쪽씩 나누었는데 표정들이 밝았다. 버스를 이용할 줄 알고 있었는데, 도보로 구룡폭포로 향한다. 구룡폭포로 가는 길이 얼마나 아래쪽으로 내려가는지 한 시간을 오니(12:00)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에서 쉬는데 벌써 시장하다. 준비해간 건빵을 나누었다. 인기 만점이다.

입장료는 1인당 42원(8400원)이다. 외국인은 3배라하여 24000원이라고 우긴다. 참 모를 일이다. 남는 돈은 기사와 본인이 1/2씩 나눈다고 한다.

구룡폭포는 장관을 이루었는데 우리나라보다 수원이 풍부하고 높이가 좀 높은 특징이 있다. 12:25 폭포입구 삼거리 출발하여 13:00에 동대문에 도착하여 승차 버스는 시원하고 좋았다. 여기서 황산 점심식당까지는 한 시간이 소요된다.

용수산식당 2층에서 식사를 하는데 돼지고기 삼겹살이다. 우리 입맛에 꼭 알맞은 음식이었다. 볼 일보고 숙소인 남경까지는 두 시간이 걸린단다. 남경에 도착하니 이른 저녁 시간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공자의 제자교육을 한 부자묘를 구경하고 강건너는 창녀촌 이쪽은 학구촌으로 나뉘었던 당시 상황을 가이드가 설명하여 준다. 우리나라 명동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외국인이 많았고, 야경이 화려하였다. 한 시간을 구경하고 되돌아와 버스에 오르니 숙소로 이동하였다.

비에 젖은 옷을 말리려하여도 드라이기가 없었다. 피곤하여 일찍 잤다. 다음날은 05:00 기상, 06:10 로비 집결하여 출발하여야 연운항에 13:00 도착하여야 15:00 배를 탈수 있단다. 그래서 아침식사는 빵과 우유로 하였고, 버스에 올라 배당을 받기로 하였다.


2009. 8. 12.(수) 갬

05:00기상 짐을 챙겨 06:10 나왔는데 한분이 안나왔다. 6:30에야 나왔는데 여권을 찾았단다. 어제 밤 호텔 투숙 시 맡긴 것을 잊은 모양이다.  늦으면 출근 인파로 남경시가지를 벗어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면 안 되기에..... 이곳은 출근시간이 8시라고 한다. 시내버스는 간혹 한 대씩 스쳐 지나간다. 장강대교를 지나 고속도로로 올라와 조금오니 “태평호”라고  이름 하는 인공호수가 엄청나게 크다. 창밖의 중국 시골의 전경을 보면서 오는데 대나무산이 많은 것과 작설차 밭이 낮은 산을 차밭으로 바꾸어 두었다.


중국의 치산 정책은 최근에 바뀌어 개인에게 일정한 산을 불하하여 주면 개인이 소득 작물을 심어 개인이 취득한다고 하니 자신이 수입이 될만한 좋은 품종을 가꿈으로써 산이 푸르게 변화 되고 있었다. 그리고 특징 하나는 운하가 너무나 많아 강인지 운하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가이드 설명으로는 약 100개 정도 운하가 있다고 한다. 저렴한 교통수단으로는 최고였다. 버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잔다. 09:20에 회안시에 주은래기념관을 40분간 관람하고 나왔다 기념관은 혁명가 정도로 볼 수 있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두 시간쯤 왔을 때 구화산휴게소이다. 아이스크림 도는 커피를 찾았으나 없단다. 휴게소에는 우리차 외에는 없었다. 중국은 고속도로 비용이 우리보다 3배정도 비싸서 일반서민은 통행이 어렵고 가진 자를 위한 고속도로여서 100㎞당 약 100원(우리돈 20,000원) 정도 된다고 한다. 따라서 고속도로에서는 고속버스도 아주 드물고, 주 고객은 화물이었고, 관광버스 장거리 버스 등이고 승용차는 아주 고급품종의 승용들이 120정도 속도를 내고 달린다.

13:05분 연운항에 도착하여 소지품 검사를 받고 항구로 나오는데 20분정도 소요

배에 올라오니, 남자 18명은 창도 없는 36인승 방으로 배정, 여성 8명은 침대방 두개로 정리되어 있었다. 일단 짐을 정리하고 한국식당으로 올라가서 소주 한잔하고 18명이 모여 토론회를 가졌다. 이번은 실패하였으니 우리끼리 가이드 없이 비행기로 다녀가자고 의논하였다.  평택항에 도착이 15:00, 평택역에 나와 저녁식사 후 해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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