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1. 일시 : 2014.12.29.-30
2. 장소 : 춘천 김유정문학촌, 청평사.
3. 여행기
춘천은 2년만에 가보는 것 같다. 오늘은 소양호로가서 청평사를 보고 나오면서 김유정 문학촌에 들려볼 계획이었으나, 강주변에 안개가 너무 짙게 끼어서 반대로 김유정 문학촌을 먼저 들려보고 청평사로 가는 것으로 바꾸었다. 29일 저녁에 도착하여 곰배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곰배령은 인제에 있는 산고개 이름이다. 강원도의 향토음식이라 구수한 음식풍이겠다 싶어 주문을 하였는데 맨 먼저 나온 메뉴는 굴이었다. 이것은 강원도 풍은 아니다 싶었다.
다른 산나물 반찬 등은 좋았는데 감자 반찬이나 요리가 나오지 않아 서운했다.
식사후 숙소에 와서 일찍잠을 청했다.
오전일찍 움직여서 두곳의 여행을 시간을 갖고 느긋하게 하고 싶었는데 일기가 따라주지 않는다. 물안개가 피어올라 전방 20미터 앞이 안보이는 지경이다. 하는 수 없이 강원도 춘천시 김유정로 1430-14 에 위치한 김유정 문학촌(The Literary Village of Kim you jeong)을 찾았다. 안내소의 연락전화는 033-261-4650번이고 홈페이지는 www.kimyoujeong.org이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 학생들이 한 팀 와서 관람을 하고 있다. 안내소에 들렸더니 가이드가 반겨준다. 안내소에는 춘천인근 5시군의 안내와 홍보관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낭만누리문학촌 기획전시실에서는 한국의 내오라하는 문학가들의 친필원고를 93명을 모아서 전시하는데 연대별로 작가의 고향과 약력을 간략하게 소개해 두었다. 여기에 김유정의 원고는 없다.
김유정(金裕貞)은 춘천시 동면 신동리(실레마을)에서 1908.2.12.일 청풍김씨 김춘식의 2남으로 태어난다. 유아기에 서울 종로로 이사를 한뒤 7세 되던 때 어머니를, 9세 되던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모성결핍증으로 한때 말을 더듬기도 했다. 1923년 휘문고보에 입학하여 1929년에 졸업을 하고 1930년 4월6일 연희전문에 입학하나 당대의 명창 박녹주를 열렬히 구애하느라 학교 결석이 잦아 두 달 만에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실연과 제적의 상처를 안고 고향으로 귀향하여 설레마을에 금병의숙을 세워 야학 등 농촌계몽운동을 2년간 하는 가운데 1930년대의 궁핍한 농촌현실을 체험한다. 1933년 상경하여 농촌과 도시의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신명에 빠졌다. 1933년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 뒤 1935년에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현상모집에 1등으로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으로 입선함으로써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한편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한다. 김유정은 등단이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등 최악의 환경속에서도 글쓰기의 열정으로 살았다. 1937년 다섯째 누인의 과수원 토방에서 투병중 휘분고보 동창인 안회남에게 편지쓰기(필승 前, 3.18)을 끝으로 1937년 3.29일 30의 나이에 삶을 마감한다.
나의 기억속에 김유정의 작품은 봄봄, 동백꽃 정도가 기억 속에 살아있었더랬다.
오늘 여기와보니 30편정도의 책을 썼다는데 작품을 소개하자면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노다지』, 『금따는 콩밭』, 『금』, 『떡』, 『만무방』, 『산골』, 『솥』, 『홍길동전』, 『봄봄』, 『안해』, 『심청』, 『봄과 따라지』, 『가을』, 『두꺼비』, 『봄밤』, 『이런 음악회』, 『동백꽃』, 『夜櫻(야앵)』, 『옥토끼』, 『생의 반려』, 『정조』, 『슬픈이야기』, 『따라지』, 『땡볕』, 『연기』, 『정분』, 『두포전』,『형』, 『애기』 (발표연대순으로 정리함)
※ 따라지 : 1. 체구가 작은 사람. 2. 따분한 존재. 3. 노름판에서 한끗발 등의 뜻이 있다.
이 문학촌에서는 매년 3.29일이 되면 김유정 추모제가 열리고, 5월에는 김유정 문학제, 7월에는 김유정 문학캠프, 10월에는 실레마을 이야기 잔치, 11월에는 생가 지붕에 이엉 역어 올리기 등의 행사가 있다. 우리나라 7개의 민속마을 중에는 어는 지역 민속마을에는 이 지붕의 이엉역어 지붕이기가 힘들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이곳은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 같다.
생가는 금병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데 생가의 재건은 조카 김영수씨가 그 집을 잘 알고 있어 도면을 작성하고 마을주민의 혐조와 고증을 거쳐 2001년도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김유정역이 바로 앞에 있다가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쪽으로 약간 옮겨 두었더랬다. 그리고 마을을 한바퀴 돌 수 있도록 둘레길을 만들아 두고 있는데 거리는 5.2km로 약 1시간 반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이곳 안내소에서 점심메뉴에 대한 질문을 했더니 춘천하면 닭갈비라면서 명동지역이 제일 먼저 출발하였고 그 이후 후평동 갈갈비촌과 춘천 진입로의 닭갈비촌이 형성되어 있고 시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단다. 오늘은 명동 닭갈비촌으로 갔다. 남촌이란 식당으로 들어 갔는데 벽에 산넘어 남촌이란 TV프로그램이 붙어 있어 무슨 사연이 있는거냐고 물었더니 방송국PD가 찾아와 촬영에 협도하여 달래서 협조하여 주었는데 식사를 하면서 이곳이 남촌이네 하면서 우연히 방송프로와 일치되는 남촌이었대서 인연이 있다고 한다. 식사는 그런대로 담백하고 좋았다. 식사후 소양호로 가서 2시반 배를 타고 청평사로 향하여 갔다. 배의 운항은 그때그때 다른 모양이다. 시간표에는 30분마다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정상적인 운항은 안 되고 있었다. 운임료는 왕복 6천원, 청평사 입장료는 2천원이다. 청평사는 전설이 있는 절인데 당나라 공주의 전설이 적힌 가이드를 보고 올라가야 청평사를 제대로 알 수 있다. 공주를 사랑한 평민의 자제가 공주를 사랑하자 왕이 청년을 죽이니까 청년이 뱀으로 변하여 공주를 괴롭히자 공주는 피신으로 한국에 와서 청평사에 까지 오게 된다. 뱀은 이곳에까지 따라와서 공주를 감고 있자 공주가 식사를 얻어 올 테니 풀어 달라고 하여 풀어주고 밥 얻으러 간 사이 벼락이 쳐서 뱀이 죽고 만다. 돌아와 본 공주는 뱀을 건져서 무덤을 만들어 준다. 공주가 하룻밤 묵었던 공주굴이나, 폭포 등을 그런 사연이 있는 곳인데 청평사를 향하여 오르니 공주와 뱀을 동상을 만들어 두었다. 청평사는 자그마한 절로 아담했다. 이곳은 가을풍경이 제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시반 배를 타기위해 거주민들에게 불었더니 모두 늦어 안 된다고 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뛰어서 갔더니 4분이 늦었는데도 배가 기다려 주었다. 왜 가지 않고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달려오는 것을 보아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니 고마웠다.
참고로 청평사에서는 더덕구이가 제맛이다. 오옴리쪽 길로는 예전그대로인데...계곡은 빗물이 많이 상처를 내고 있었다.
201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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