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호소식

[스크랩] 악양면의 유래

이찬조 2015. 2. 9. 13:11

무디미 | 조회 52 |추천 0 |2004.09.01. 15:40 http://cafe.daum.net/akyang26/5FQA/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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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면은 하동군에서 가장 오래되고 일찍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청동기 시대(BC 5,000년경)엔 이미 마을이 형성되어 국가의 형태로까지 
발달한 단계에 놓여 있었다고 보여진다.
이는 진한시대말에 변한이 이땅을 지배할 때 12국의 하나인 낙노국이 
악양에서 도읍을 했을때가 BC 108년으로 이미 국가적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대가야 시대인 AD 200년경에 축성되었다는 토성이 현 악양면 정서리 솔봉밑에 있다.
백제와 대가야는 AD 250년부터 AD 529년까지 이땅을 지배하다가 물러났다간 
다시 지배하기를 6차례에 이르렀지만, AD 529년부터 AD 662년 까지 악양을 
지배하다가 AD 662년 신라가 이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신라가 한다시군이라하여 하동을 지배했을때(675년부터 757년까지) 
악양은 <소다사현>이 되었다. 
악양(岳陽)이란 말은 중국의 악양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는 것과 
당나라 장군 소정방의 고향이 중국의 악양이기 때문에 악양이란 지명이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악양(岳陽)은 사실상 순순한 우리말이라는 것을 풀이하면 알 수 있다. 
<岳>은 우리말에 <아가>또는<岳兒>로 쓴다. 
그렇다면 <岳>은 <작다>라는 뜻이기에 <소다사>의 <소>에 해당되고 
<陽>은 <볕>을 뜻하므로 <따뜻하다,다사롭다>라는 뜻과 같다. 
결국 <岳>은 <소>고, <陽>은 <다사롭다>에서 접미사 <롭다>를 뺀 
<다사>의 뜻이므로 <소다사>(향찰식 표기)를 한자로 쓴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다사현은 한다사군에 속했으며 AD 920년엔 <악양현>이 되었고, 
앞서 경덕왕때인 AD 757년엔 한다사군이 <하동군>으로 개칭될 때 
<소다사성>도 <악양성>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인 1018년엔 진주목 소속이 되어서 1702년까지 진주목에 속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1598년 <악양현>을 <악양리>로 고치고 화개리를 합쳤다가 
1600년에 다시 나누어졌다. 
1703년 리(里)가 면(面)으로 될 때 악양동면과 악영서면을 두었고, 
1825년 악양동면과 악양서면을 합하여 다시 악양면으로 부르게 되었다. 
1914년 덕양면(현 하동읍)의 개치가 악양면에 편입되고 
화개면의 외둔,상평,하평,대촌,봉대,하덕,입석이 편입되었다. 
                  (資料 : '마을의 유래 및 사적전설' - 하동문화원 발행) 
악양중 26회 카페에서 무디미가 올린글을 옮겨옴	 	
							
				
 
출처 : 악양중학교총동창회
글쓴이 : 젊음의 노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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