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홍길동전 8. 스스로 잡힌 홍길동

이찬조 2021. 2. 8. 20:27
홍길동전 (洪吉童傳) (8) 스스로 잡힌 홍길동.

사람이 세상에 나매 오륜이 으뜸이요 오륜이 있으매 인의예지가 분명하거늘,
이를 알지 못하고 군부의 명을 거역하고 불충, 불효 하면 어찌 세상이 용납하리요.
나의 아우 길동은 이를 잘 알것이니 스스로 형을 찾아와 사로잡혀라.
 
우리 부친이 너로 말미암아 병이 골수에 들고 성상이 크게 근심하시니 네 죄악이 큰지라.
이러므로 나로 하여금 특별히 도백(道伯)을 제수하시고  너를 잡아 들이라 하시니
만일 잡지 못하면 우리 홍문(洪門)의 누대 청덕(淸德)이 하루 아침에 멸하리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바라건대 아우 길동은 이를 생각하여 스스로 나타나면 죄도 덜릴 것이요  일문도 보존되리니
너는 만번을 생각하여 스스로 나타나거라."
 
감사 이 방을 각 읍에 붙이고 공사를 전폐하고 길동이 나타나기만 기다리더니 하루 한 소년이 나귀를 타고 하인 수십인을 거느리고 원문(轅門 :군영) 밖에 와서 뵙기를 청하였다.
 
감사가 들어오라 하니 소년이 당상에 올라 절한다.
감사 자세히 보니 기다리던 길동이라 크게 놀라고 기뻐하며 좌우를 물리치고 그 손을 잡고 흐느껴 울며 말한다.
 
"길동아, 네 한 번 집을 나간 후 사생 존망(死生存亡)을 알지 못하여 부친께서 병이 깊거늘
너는 갈수록 불충 불효를 행하며  도둑이 되어 세상에 죄를 짓는구나.
 
이러므로 성상이 진노하여 나로 하여금 너를 잡아 들이라 하시니, 이는 피치 못할 죄라.
너는 일찍 한양에 나아가 천명을 받아라."
 
"천한 소생 길동이 여기에 왔음은 부형의 위기를  구하고자 함이니 어찌 다른 말이 있겠습니까?
대감께서 당초에 천한 길동을 위하여 부친을 부친이라 하고 형을 형이라 할 수 있게 하였던들
어찌 오늘에 이르렀겠습니까? 
이제 지난 일은 일러 쓸데 없거니와 이 소제(小弟)를 결박하여
한양으로 올려보내소서."
 
인형이 길동을 결박하여 한양으로 올려 보내는데, 지나는 각 읍 백성들이 길동의 재주를 들었는지라
그를 보기위해 가는곳 마다 길을 메우고 나와 구경을 하였다.
 
친형인 경상감사 인형에게 스스로 체포된 홍길동, 이때에 동시에 나머지 도(道)에서도 길동이 체포
되었는데 팔도에 하나씩 모두 여덟이라.
 
모두 한양으로 압송되었는데,
"내가 길동이다, 너는 아니다."
 
하며 서로 싸우니 상이 친국을 하는 마당에서도 도무지 누가 길동인지 알 수 없었다.
상이 이상히 여겨 곧 홍모를 불러 명하였다.
 
"저 여덞 중에 경이 아들을 찾아내시오."
"신의 아들 길동은 왼쪽 다리에 붉은 혈점(血點)이 있으니 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고 여덟 길동을 꾸짖는다.
"네 지척에 임금이 계시고 아래로 아비가 있거늘 이렇듯 성상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팔도를소요케 하느냐 !  너는 불충과 불효로 천고에 없는 죄를 지었으니 죽기를 아끼지 마라."
 
이에 길동이 상께,
"신의 아비 국은을 많이 입었사오니 신이 어찌 불측한 행사를 하오리까마는, 신은 본래 천비 소생이라
그 아비를 아비라 못하고 그 형을 형이라 못하였으니 평생 이것이 한이되어 집을 버리고 도둑이 되었으나, 백성은 조금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 않았사옵고 각 읍 수령이 백성의 피를 빠는 재물만을 빼앗았습니다. 이제 십 년을지나면 떠나갈 곳이 있으니 바라건대 성상은 근심치 마시고 신을 잡으라는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하며 여덞이 일시에 넘어지거늘 자세히 보니 모두 볏짚으로 만든 초인이었다.
상이 더욱 놀라시며 진짜 홍길동 잡기를  명하는 공문을 팔도에 다시 내려 보냈다.
 
그러자 얼마후 한양 사대문에 방이 붙었는데 ,
홍길동이 쓴것이 명명백백 하였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요신 홍길동은 아무리 하여도  잡지  못할 것이나,
병조판서(兵曺判書) 교지(敎旨)를 내리시면 잡히리라."
 
상이 그  방문을 보시고 조신을 모아 의논하시니, 제신들이 이구동성(二口同聲)으로 말하는데,
"이제 그 도둑을 잡으려다 잡지 못하고 도리어 병조 판서를 제수하심은 옳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