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28 -경종 2

이찬조 2021. 7. 18. 22:57
고려왕조실록(28) 경종 2
*예고된 피바람....

“전하 전날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의 원혼을 풀어주고 남아있는 가족들의 심정도 헤아려 주셔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어느 날 왕선이 경종 앞에 나아가 광종시대에 희생된 호족들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노복이 제 주인을 참소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빌미로 해코지를 하고자 고변하는 자들이 줄을 이었으니 생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제 억울한 이의 마음을 풀어주고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는 의미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스스로 이를 바로잡을 기회를 주어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왕손이 왕에게 고변하는 내용인즉 과거에 억울한 일을 당했던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복수극을 벌일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왕에 나라 안의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잡고 왕실로부터 이반한 세력들을 끌어들이려면 그들의 억울한 심사를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왕손의 논리에 경종은 “그렇지!! 과거에 잘못된 일이 있었다면 이를 바로잡을 기회를 주어야하지 않겠느냐?” 하고 별다른 생각 없이 왕선의 제안을 허용하게 되니, 이는 또 다른 복수극의 시작이었고 이로 인해 고려는 다시 피바람의 폭풍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됩니다. 끔찍한 복수의 향연이 곳곳에서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경종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고 마는데, 이는 왕선이 복수극을 벌인다는 핑계로 태조의 아들이기도 한 효성태자와 원녕태자를 살해해 버린 것입니다.

두 태자가 호족들의 숙청에 깊이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긴 하지만, 왕선으로서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시한폭탄, 건너지 말아야할 강을 건너고 만 것입니다. 이미 군왕의 명이 있었으니 합법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이는 호족이 왕족을 징치하였다고 볼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경종은 벌써부터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마음을 다져잡고 왕선을 귀양보내버리고 사사로이 복수하는 것을 금하도록 하여 나라의 안정을 꾀하고자 합니다.

왕선을 귀양 보내고 흐트러진 정국을 가다듬고자 고심하던 경종은 좌우 집정제를 전격 도입합니다.

이는 한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상호견제 속에서 바른 정치를 펼쳐나가자는 뜻에서 마련한 제도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왕의 권위를 높이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습니다. 또한 토지개혁을 단행하게 되는데 이는 큰 의미를 갖는 일이었습니다.

즉 토지는 곧 경제력의 상징이자 개인이 가진 권력의 근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지개혁은 자칫 잘못하면 나라 전체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을 확률이 대단히 높은 위험한 개혁의 핵심이자 정권의 안정이냐 혼란이냐를 결정지우는 아주 중요한 민감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종은 부왕 광종이 다져놓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토지개혁을 밀어붙이고 전시과(田柴科) 제도를 공포하기에 이릅니다.

전시과는 토지를 분배해 줄 때 세금을 거둔다는 조건이 붙은 전지(田地)와 땔나무를 공납하는 조건의시지(柴地)를 같이 분배하는 수조지(收租地)를 나누어 주었는데, 특이한 점은 분배 기준에 관품(官品) 외에도 인품(人品)을 추가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존의 호족 세력과 신진관료들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려한 제도로 관품만을 기준으로하다 보면 신진 관료들은 개국에 공이 많은 기존 호족 공신에게 비교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호족공신들을 최대한 포용하면서 신진관료 세력을 키워 상호 견제가 가능한 새로운 토지개혁 방안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토지제도와 관제가 새롭게 자리잡고 나자 고려는 차츰 안정기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바야흐로 광종 시절에 피로 점철된 공포정치를 청산하고 화합과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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