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112 - 충혜왕 3

이찬조 2021. 10. 30. 06:30

고려왕조실록 112 - 충혜왕 3

- 계속되는 음란행위

 

충혜왕이 즉위한 그해 5월 초하루 자신의 장인 삼사좌사 홍융의 집을 방문한 충혜왕은 장인의 후처인 황씨를 강간하는 큰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술자리가 거나해지자 충혜왕은 주위를 모두 물리치고 황씨 만을 남아있게 하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강제로 범해버린 것입니다. 기절초풍할 일이었습니다.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비 충숙왕의 후비인 수비 권씨를 또 음간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서모를 성적 노리개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긴 임금은 만인의 어버이요 주인일진데 어미인들 장모인들 다 자기 마음대로라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충혜왕의 음행은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는 내시 유성의 처인 인씨가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대신 구천우와 강윤충을 대동하고 유성의 집을 방문하여 역시나 술자리에서 강제로 음간을 해버립니다. 충혜왕은 주위에 자기 마음대로 해도 전혀 문제가 안되는 여인들이 잔뜩 깔려있고 서로들 한번 품에 안아 주기만을 학수고대하는 궁궐내의 여인들이 잔뜩 있는데도 문제가 될 여인들만을 골라서 그 짓을 해대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충혜왕이 손을 댄 여인네들은 한결같이 임질에 걸려 고생을 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339년 6월 계미일에 충혜왕이 의원 복술을 시켜 장인의 후처 황씨의 임질을 치료하도록 하였다.’라는 대목이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성병 환자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원나라에서 방탕한 생활 중에 얻은 것인지 아니면 충혜왕이 정력에 좋다는 열약을 복용하곤 하였는데 이를 체내에서 소화 시키지 못하여 임질이 생겼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이외에도 충혜왕의 기이하고 음탕한 성적 행각을 일일이 나열하면 끝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의 폐위와 죽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경화공주(숙경휘령 공주)의 강간 사건에 대해서만 설명하고자 합니다.

 

경화 공주는 몽고 여자로 부왕 충숙왕의 셋째 부인이었습니다. 충혜왕은 경화 공주를 위하여 연안궁에서 향연을 베풀었는데 이에 대한 답례로 경화공주가 향연을 열었을때, 그는 취한 척하며 그녀를 강제로 범해 버렸습니다. 더구나 그녀가 강하게 반항하자 주변 수하들이 그녀의 사지를 붙잡게 하고 강간을 해 버렸기 때문에 그녀의 수치심은 더더욱 컷을 것입니다.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경화 공주는 원나라로 돌아가려하였으나 충혜왕이 말 시장을 폐쇄해 버리는 바람에 말을 구하지 못하여 포기하게 됩니다. 끙끙 속병을 앓던 경화 공주는 심양왕의 측근인 조적을 만나 사정을 얘기하니 조적이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조적의 반란은 손쉽게 진압이 되고 말지만, 소문은 퍼져서 그 즈음 원나라에서 온 사신 두런과 구통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맙니다. 두 원나라 사신들은 충혜왕의 책봉을 허락한다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온 사신들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이들에 의해 붙잡혀 원나라로 압송이 되는 꼴이 되고 맙니다.

 

충혜왕이 원나라로 끌려가자 정권을 대리하게 된 경화 공주는 자신이 강간당할 때 충혜왕을 도운 정천기 등을 귀양 보내고 관리들을 대거 교체해 버립니다.

 

그런데 고려사에 한 가지 아주 흥미로운 기록이 발견 되는데, 충혜왕과 결혼한 원나라 덕녕 공주가 정천기를 석방하여 궁중에 몰래 숨겨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덕녕 공주가 무슨 생각에서 정천기를 구해 주었는지 모르겠으나 음란 행위만을 일삼은 충혜왕의 행각을 돌이켜 보건데 덕녕 공주의 그러한 행동에 대해서는 미묘한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