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蔚珍)군을 돌아보고...(2009.3.7.토)
울진군하면 생각나는 것이 뭘까?
맨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초등학교때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사건...
그 다음은 후포, 평해, 죽변이 도시의 축이고,
온천이 백암온천(경북 영양군과 경계), 덕구온천(강원 삼척과 경계)이며,
정자로는 월송정과 망양정이 있다.
사찰로는 불영사가 부처님이 앞쪽 연못에 비취었다하여 불영사란 이름이 지어진 곳이다.
울진의 명산물은 대게이다.
물론 대게하면 영덕을 꼽는다. 울진출신들은 이 부분을 아주 안타깝게 생각한다.
동해안은 대게가 상당히 잡힌다.
북으로는 동해, 삼척, 울진, 영덕, 포항, 울산까지 대게가 잡힌다. 그중에서 영덕이 앞서서 상표권을 확보한 모양이다.
울진대게 시세를 알아보니 무슨 게는 한 마리에 13만원을 달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좀 먹을 만한 게는 35,000원, 좀더 작으면 25,000원 이라고 한다. 한 마리는 1인분은 됨직하다.
백암온천(白巖溫泉)/ 울진군 온정면(溫井面) 온정리
백암온천은 얼마 전까지 울진의 대명사였다고 볼 수 있다. 1979년 국민광광특구로 지정되어 오늘까지 이르는데 손님은 많이 줄어든 것 같고, 숙박시설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위락시설은 입구에 약간 있었고, 아름다운 소나무 한그루가 보은의 정삼품송처럼 의젖하게 입구에 자리잡고 있었다.
유황온천으로, 염화칼륨 ·수산화나트륨 ·수산화마그네슘 ·중탄산철 등을 함유하고 있어 각종 질병에 효과가 있다. 주변 분들의 이야기로는 백암온천은 수원이 부족하여 인공으로 물을 만들어 혼용한다고 하며 덕구온천을 추천한다.
여기서 영양까지는 40Km 정도...
월송정(越松亭)/울진군 평해읍 관내
월송정은 동해바닷가에 소나무 밭에 세워진 정자였다. 규모가 제법 크고 관리도 잘되어 있다. 여기서 바다까지는 100미터 정도 이고, 정월대보름날 행사에 쓰였던 다리밟기 놀이기구가 바닷가 가는 길에 놓여있었다. 이 도구는 사람의 다리와 물위에 놓인 다리가 같은 음을 지니고 있어 이 다리를 밟으면 1년간 다리가 이프지 않고 건강할 수 있다는 미신에서 유래 된듯하다. 그 길이는 약 7-8미터의 모형다리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었다.
신라시대의 화랑들(永 ·述 ·南石 ·安祥)이 이 곳의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仙遊)하였다는 정자이다. 관동8경(關東八景)의 하나로, ‘月松亭’이라고도 쓴다. 명승을 찾는 시인 ·묵객들이 하나같이 탄복한 곳이라고 한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이미 월송사(月松寺) 부근에 창건되었던 것을 조선 중기 연산군 때의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혹은, 그가 창건하였다고도 함)하였다고 하며, 오랜 세월에 퇴락한 것을 향인(鄕人)들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한말에 일본군이 철거해버렸다. 1969년에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같지 않아서 해체하고 1980년 7월에 현재의 정자(정면 5칸, 측면 3칸, 26평)로 복원하였으며, 현판은 최규하(崔圭夏)의 휘호로 되어 있다. 관동8경을 꼽을 경우, 월송정 대신 강원 통천군 흡곡(歙谷)에 있는 시중대(侍中臺)를 꼽는 이도 있다.
망양정 [望洋亭]/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소재
망양정은 원래 다른쪽에 있었는데 바닷가를 굽어보는 산마루로 이전되어 있었다.
2005년도 새롭게 지은 건물로 산을 오르는 길은 도보로만 오를 수밖에 없었다.
발아래 바다를 굽어보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좋은데,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사랑받기 어려운 건물로 될 가능성이 높았다. 산위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고, 확트인 동해가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바로 인근에는 일출을 조명하기 좋은 해맞이공원이 있었다.
망양정은 송강 정철이 노래한 관동팔경 중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자이다. 그러나 정철 당시에는 현종산 자락에 있었고, 조선 철종 때인 1858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으니 지금의 망양정을 당시의 관동팔경이라고 이해하기는 좀 곤란하다.
지금의 망양정은 망양해수욕장의 남쪽, 야트막한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앞이 탁 트였으면 시원한 동해를 내려볼 수 있는 자리지만 지금은 나무들이 자라 망양정의 시야를 막고 있다. 그러나 그래도 군데군데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자리가 있으며, 망양해수욕장 쪽은 시원하게 시계가 열려 있다.
성류굴 [聖留窟]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近南面) 구산리(九山里)(관리소 054-782-4006)에 소재하는데
지정번호 천연기념물 제155호(지정연도 1963년 5월 7일)
크기 주굴 길이 약 470m, 전체 길이 약 800m (면적 13만 7554㎡)
1963년 5월 7일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탱천굴(撑天窟)·선유굴(仙遊窟)이라고도 한다. 입구는 선유산(仙遊山) 절벽 밑, 왕피천(王避川)가에 있는 좁은 바위구멍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동굴의 하나로, 고려 말의 학자 이곡(李穀)이 성류굴에 대하여 언급한 《관동유기(關東遊記)》는 한국 최초의 동굴탐사기가 되는 셈이다.
동굴은 대체로 남서쪽에서 북동쪽을 향해 전개되고 크고 작은 9개의 동방(洞房)과 5개의 호소(湖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곳에 각양각색의 종유석·석순·석주 등이 빽빽이 늘어서 있다. 특히 제3동방은 남북간 32m, 동서간 50여m에 달하는 큰 공동(空洞)이다. 이 곳에는 최대깊이가 8m에 이르는 ‘마(魔)의 심연(深淵)’이라는 큰 동굴호가 있는데 주위 벽면에 발달한 큰 규모의 종유석들이 수면에 잠기는 절경을 보인다.
제4∼8동방으로 연결되는 일대에도 많은 석주열(石柱列), 거형 석순, 종유벽 등 크고 다채로운 퇴적경관이 전개되어 만물상(萬物相)·운상대(雲上臺)·여의동(如意洞)·음향동(音響洞)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제9동방은 제8동방 남동쪽 후미진 곳에 있으며, 남북간 약 50m, 동서간 17m 가량이다. 이 곳의 바닥에는 많은 박쥐똥 등의 퇴적물이 있으며, 이 동굴에서 유일하게 오염이 안 된 부분이기도 하다. 동굴 안의 온도는 연중 15∼17℃로 거의 변함이 없다.
왕피천변의 깍아지른 절벽아래 있었고, 매표소는 왕피천(60Km)에 정자를 세워 매표소로 활용하고 있었다. 성류굴로 갈수 있도록 절벽에 덧붙여 강바닥위에 인도를 건설해 두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공설운동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왕피천은 말라 있었으나 성류굴 앞쪽에는 보를 두어 물을 관리하고 있었다.
불영계곡과 불영사[佛影寺]/ 울진군(蔚珍郡) 서면(西面) 하원리(下院里) 천축산(天竺山) 소재
36번 도로변 서쪽(봉화)에서 동쪽(울진)방향으로 불영사란 간판을 걸어두고 있었다. 계곡은 높이가 상당히 높아 여름철에는 손님이 많을 것 같았다. 손님은 많지 않았고 드문드문 일행이 찾아들고 있었다. 이 절은 여승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인근에는 사랑바위란 바위가 있었고, 절의 규모는 크지 않고 수도하는 집 앞의 느티나무 수령은 양쪽에 600년 된 나무가 있었다. 즉 조선초기의 나무라볼 수 있다.
호수도 크지 않았고, 물의 깊이도 깊지 않았다.
불영사를 돌아 나오는 길은 2차선으로 봉화 울진간 60Km가 꼬불길이다. 강원도 보다 더 고불길로 유명하다. 지도를 보고 요즘도 이런 길이 있을까? 하였는데 내를 따라 도로를 만들었는데 이 길을 만들면서 유명을 달리한 분들도 많았던지 비를 세워 두고 있었다.
행곡2리의 300년된 소나무가 일품이라 한 컷하고.... 인근의 어느 집 정원에는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
경북의 바닷가 길과 강원의 바닷가 길은 어느 곳을 보아도 절경이다.
마지막 코스인 덕구온천은 다음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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