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중국의 역사(원나라 이후)

이찬조 2009. 12. 8. 09:33

1.원나라


원나라(元 ; 중국 대륙에 있던 국가로서는 1271년~1368년, 유목국가로는 1271년~1635년)는 일반적으로 중국이 몽골의 지배를 받은 시기를 말한다. 몽골족의 정복 왕조 원나라는 중국과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한 영역을 지배하다가 명나라를 건국하는 주원장에 의해 북쪽으로 쫓겨난 뒤 ("북원"), 유목민 국가로 1635년까지 존속한 몽골인 왕조로서, 몽골 제국의 대칸 직할 세습령이었다. 정식 국호는 대원(大元)이었다.

원나라는 송나라 를 멸망시킨 이민족의 정복 국가이며, 중국을 식민 지배하였다. 이후 명나라에게 중국의 지배권을 물려주게 된다. 원나라는 중국을 지배했으되 한족화 되지는 않았으며, 지배층뿐 아니라, 제도 및 문화에서도 기존 몽골 제국의 유목 국가적인 특성을 유지했다. 그 때문에 원나라라는 호칭 대신 유목민의 나라를 가리키는 울루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대원 울루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게 있어 이 시기는 몽골인에게 식민 지배를 당한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중국인의 인구가 급감하였으며, 극심한 민족 차별 정책으로, 중국인들은 하층 민족으로 구분되어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했다. 그로 인해 중국식 성명을 사용하지 못하고 몽골식 성명으로 이름을 바꿔야 했다.


2.명나라


(明, 1368년 - 1644년)은 중국 역대 왕조중 하나로써 주원장이 원나라를 몰아내고 세운 한족의 왕조이다. 대명(大明)이라고도 불린다. 멸망 후에는 청나라가 명나라의 재건을 목표로 한 남명(南明)정권을 제압하여 중국을 지배했다.



전성기의 명나라 영토


몽골이 건국한 원나라 왕조는 14세기에 들어와 제위상속을 둘러싸고 다툼이 일어나 통치능력이 저하되었다. 거기에 천재지변과 전염병이 차례로 일어났기 때문에 백련교도1351년홍건적의 난을 일으키자 반란은 순식간에 널리 퍼져나갔다. 홍건군의 일부 장수였던 가난한 농부출신 주원장(훗날 태조 홍무제)은 남경을 근거지로 하여 장강유역을 통일하는 데 성공하여 1368년 명나라를 건국하였다. 홍무제는 건국하자마자 북벌을 개시하여 원 순제(토곤 티무르)는 대도(북경)를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쳐 만리장성이남의 중국은 명나라에 의해 통일되었다.

홍무제는 통일을 달성한 뒤에는 외정을 자제하고, 농촌의 토지조사 및 인구조사를 진행해 이갑제, 위소제를 배포하고 내정의 안정에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홍무제는 건국공신을 숙청하고, 재상이 있던 중서령을 폐지하고 6부를 황제 직속으로 만들어 독재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1398년 홍무제가 죽자 2대 황제였던 손자 건문제와 숙부였던 홍무제의 아들들 사이에서 불화가 일어나, 북경을 중심으로 북방의 방비를 맡았던 홍무제의 4남 연왕 주체가 반란을 일으켰다(정난의 변). 1402년 주체는 수도 남경을 점령하고 건문제에게서 제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했다. 그가 바로 제3대 황제 성조 영락제였다. 영락제의 즉위로 인해 정치의 중심은 다시 북경으로 이동했다.



영토 확대

영락제는 북경으로 천도하여 홍무제의 신중책을 바꿔, 왕성하게 세력을 넓혔다. 북쪽으로 후퇴한 원나라의 잔당(북원, 명나라에서는 이것을 타타르라고 부른다)은 1388년 토곤 티무르의 왕통이 단절되었으나, 영락제는 원정을 감행해 이들을 제압했다. 만주에는 여진족을 복속시켜 위소제에 조직해 넣는 데 성공했다. 남쪽은 베트남을 진조의 내란을 틈타 정복하였다.

거기에 해외의 동남아시아, 인도양까지 위신을 넓히기 위해 정화가 이끄는 대함대를 파견하여 일부는 메카,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도달한 대원정의 결과, 다수의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는 관계를 맺었다.

영락제의 사후, 몽골에 대한 원정과 동남아시아의 함대 파견은 중지되고, 베트남에서는 여조가 독립하였다. 그러나 영락제의 아들 홍희제, 손자 선덕제 2대동안 명나라의 국력은 충실해져 최전성기를 쌓았다(인선의 치).



북로남왜의 위기

한편 몽골 고원에서 서 몽골의 오이라트가 힘을 얻어 몽골을 제압하고 명나라에 침공을 가했다. 1449년영종은 측근인 환관 왕진의 부추김으로 오이라트 원정에 나섰다가 자신이 포로가 되는 대패를 맞이한 토목의 변이 일어났다.

오이라트 족장 에센 칸이 내분으로 살해되어 명나라는 위기를 벗어났으나, 후에 귀환해 복위한 영종이래 역대 황제는 자금성에서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또한 정치를 소홀히 하는 황제도 많아, 국세는 서서히 기울어지게 되었다.

16세기에 들어서 왜구가 중국인 밀교역상인과 연대하여 활동을 시작해 해안 지역을 위협하게 되었다. 거기에 몽골에서는 쿠빌라이 칸의 자손이라고 칭한 다얀 칸이 즉위하여 오이라트에 대항해 몽골의 재통일을 이룩했다. 오르도스 지방에 분봉된 다얀 칸의 손자 아르탄 칸은 16세기 중기부터 빈번하게 중국에 침입하여 1550년에는 북경을 포위하는 경술의 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시대 명나라를 괴롭히던 왜구와 몽골을 가리켜 북로남왜라고 불렀다.



명의 쇠퇴와 멸망

1572년 겨우 10살의 만력제가 즉위했다. 처음 10년간은 내각대학사 장거정이 정권을 쥐고, 국정을 바로 잡을 계획을 세웠으나, 장거정의 사후 직접 정치를 시작하자 황제는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재위는 48년 동안 누렸으나, 일본에게 침공당한 조선의 구원을 위해 원정에 나서는 등 전쟁비용으로 인해 재정은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위험한 시국을 우려한 인사가 무석의 동림사원에 집결하여 동림당이라 불린 정치집단이 만들어졌다. 이후 동림당과 반동림당의 정쟁이 일어났다. 만력제의 사후에도 태창제는 즉위후 곧바로 급사하여 천계제는 총신인 환관 위충현에게 국정을 위임하는 등 정정의 혼란이 계속되었다. 위충현에 의해 동림서원은 봉쇄되어 동림당의 인사도 투옥되거나 살해되었다.

천계제는 7년의 짧은 치세 후 죽고, 숭정제가 즉위하던 시기 명나라는 말기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거기에 즉위후 곧바로 기근과 반란이 차례로 발생하고, 거기에 후금군의 침공도 나날이 격해져갔다. 명장 원숭환이 후금군의 침공을 방어했으나, 후금의 홍타이지의 책략에 걸린 숭정제가 원숭환을 의심하여 주살하자 후금군을 억누를 힘이 없어졌고, 뒤이어 도적의 우두머리였던 고영상이 이미 백성들을 규합, 틈왕(闖王)이라 자칭, 그 뒤를 이은 이자성이 서안을 점거하고 국호를 대순(大順)이라 칭하고 북경에 육박했다. 1644년 이자성군의 포위 앞에 숭정제는 자살하였고, 명나라는 멸망했다.

같은 해 후금은 국호를 (淸)으로 바꾼 뒤, 이자성까지 격파하고 베이징을 점령하여 중국 지배를 선언하였다. 중국 남부에서는 명나라의 황족과 관료들이 남명정권을 세우고 청나라에 저항했으나, 운남에서 미얀마까지 도망쳤던 영력제를 최후로 멸망시켰다. 복건에서도 정성공이 대만을 점거하고 저항했으나, 정씨 왕국은 후에 청나라에 항복했다.

1724년 명나라의 대왕 주이의 손자, 주지련이 청나라 옹정제로부터 1등 연은후의 작위를 받고, 이후 이 자손은 명나라의 제사를 이어갔다.



3.청나라


청나라(淸) 또는 대청제국(大淸帝國)은 일반적으로 중국이 만주족의 지배를 받은 시기를 말한다. 원래 청나라는 1616년여진족누르하치가 동북 지역에 건국한 이민족의 나라를 말하는데, 초기에는 금(흔히 “후금”이라 부름)이었다가 후에 세력을 강화하여 청으로 국호를 바꿨다.

이민족의 나라 청나라는 한족의 중국 명나라뿐 아니라 주변의 몽골, 위구르, 티베트를 모두 정복하여 몽골 제국(원나라)을 제외한 역대 중국 왕조 중에서 가장 큰 영토를 이루게 되며, 이민족으로써는 가장 오랫동안 중국을 지배하였다. 1912년선통제 푸이 대에서 서구열강 세력 등의 영향으로 국력이 약해져 청나라는 멸망하고, 중국 역사에서 2천여 년간 이어졌던 제국의 시대가 끝나게 된다.

중국에게 있어 이 시기는 만주족에게 식민 지배를 당한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청나라 초기에는 만주족에 의한 학살로 인구가 급감하기도 했었고, 피지배계층 한족들은 만주족의 풍습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다 학살과 탄압을 당했으며, 이로인해 말기에 만주족의 중국 지배를 반대하는 '멸만흥한(滅滿興漢)'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청나라의 건국

1616년만주족누르하치만주를 통일하고, 예전에 만주족의 다른 이름인 여진족이 세웠던 금나라를 잇는다는 뜻에서 후금(後金)이란 이름의 나라를 세우며 시작되었다. 그 후계자 홍타이지는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주변 각국을 침공하여 영토를 확장함과 동시에 군사·행정 제도인 팔기(八旗) 체제를 확립하였다. 홍타이지의 다음에 즉위한 순치제(順治帝) 때 청의 팔기군명나라 수도였던 베이징을 점령하고 수도로 삼았다.

청나라 군대가 만리장성을 넘어서 중국에 들어올 때 ‘양주십일(揚州十日)’,‘가정삼도(嘉定三屠)’와 ‘머리카락을 기르면 목을 자른다(留發不留頭)’는 등의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중원을 정복한 만주족은, 피지배층 한족들로부터 오랑캐라고 극심한 저항을 받았는데, 이들을 기선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많은 학살을 자행하였다. 특히 양주십일이라는 무서운 대학살극이 일어나 모든 도시에 들어가서 주민들을 도살하기도 하고, 남자는 도살하고 여자는 살려두기도 하였다.

양저우 한 곳에서만 약 80만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1]

[2]

이 때 학살당한 인원수는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약 5,000만 명에서 최대 1억명의 중국인이 만주족에게 학살됬다는 주장도 있다.[3]

 이 주장이 완전히 맞다고 할 수는 없어도, 학살로 인한 인구 감소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정복 초기에만 학살이 있었을 뿐, 이후에 체제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 하면서 인구는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4. 중화민국(1912-1949)


중화민국(中華民國)은 동아시아에 있는 미승인 국가이다. 1955년 이후 타이완 섬(대만)과 진마 지구(金馬 地區)를 통치하고 있으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중국 본토(중화인민공화국, 일본국, 필리핀 공화국과 접하고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 일본, 중화인민공화국과 함께 동아시아를 이루고 있다.

1912년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국(中國) 역사상 최초의 공화제 국가로 성립하여, 1928년 이후로는 중국의 거의 전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당의 중화민국 정부는 제2차 세계 대전중화인민공화국(공산중국, Communist China)과의 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1949년 중국 대륙의 영토를 상실하고 타이완 섬(대만)으로 후퇴, 철수하였다.

타이완 섬으로 후퇴한 이후로도 중화민국은 “중국의 정통 정부”를 자칭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중화민국은 세계적으로 중국의 정통 정부로 승인되지 않는 미승인 국가 상황에 빠지게 되어 대외적으로 정식 국명이 통용될 기회가 한정되어 있다. (중화민국의 정치를 참고.)

현재 이 나라를 승인하는 나라는 겨우 23개국에 불과하다. 국제 사회에서는 “타이완”(臺灣)이라고 하는 ‘사실상 독립된 국가’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으며, 대만(臺灣, Taiwan) 또는 자유중국(自由中國, Free China)으로 더 잘 알려졌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타이완 지역을 중국의 23개의 성(省) 중 하나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중화민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제무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증대되면서 대륙 수복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중화민국의 정치 무대는 대륙 수복을 추구하는 세력과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양분된 상태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타이완(대만)이 독립을 선언하면 무력 침공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현재에는 중국 본토 출신인 중국국민당 소속 마잉주 총통의 당선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가 많이 좋아지고 있으며, 대륙 수복을 추구하는 세력의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하지만, 반대파에 대한 강경한 정책으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5. 중화인민공화국(1949-)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 중국어간체: 中华人民共和国, 정체:中華人民共和國, 병음:Zhōnghuá Rénmín Gònghéguó듣기(도움말·정보))은 동아시아에 있는 인민공화국이자 공산주의 국가이다. 세계 최대의 인구와 넓은 국토 때문에 그 영토는 중국 대륙이라 불리기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1949년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세워졌으며, 중국 공산당이 국정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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