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696

2021. 추석-210920-22

내자는 토요일부터 추석준비에 바쁘다. 나는 20일 오전에 둘째가 데리러 오래서 데리고 와서 집안 대청소를 했다. 애들에게 물어서 홈플러스에서 애기들이 좋아하는 케익을 하나 준비했다. 청소를 마치니 곧장 큰아이도 도착했다. 창틀까지 닦고서 내 볼 일을 본다. 노회 일로 지출계획과 예산안, 결재 서명 누락분 등을 챙겼다. 큰손주는 4년1월인데 ᆢ곱셉구구단과 덧셈놀이를 하자고 한다. 처음으로 100단구구를 한단다. 11단, 12단 등을 했고, 덧셈문제를 내라고한다. 두단위는 쉽게 맞춘다. 세단위를 하니 머뭇거리며 맞춘다. 둘째는 2년4월인데 형아를 잘 따르고 잘어울리며 귀염받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셋째 손주는 4개월인데 배만부르면 불만이 없다. 저녁을 먹고있는데 둘째사위가 근무를 마치고 왔다. 케익을 놓고..

즐거운우리집 2021.09.22

2021 성묘-210904

210903 금요일 오후 내자가 청주로 와서 시장에서 복숭아와 포도를 한박스 준비하고 진주큰노님댁에 갔더니, 하동누님과 인천동생이 먼제와서 있다. 진해는 아직 미도착, 코로나19 백신은 진해를 제외하고 모두 2차까지 마쳤다.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진해는 9시반에 돌아갔다. 일찍잤다. 다음날 07:20에 출발ᆢ만지오다가 현옥이 동생네에 들려 배를 내가 2, 동생이 3박스를 샀다. 악양에 도착하니 9시였다. 세팀으로 형님 두분은 외둔 뒤에 3봉상, 장조카는 할머니 큰어머님, 외할아버지 묘를 하고, 우리는 아버님,어머님, 백부님 산소를 하고 형님께 연락했더니 개치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우리는 도착해서 주차해 두고 형님트럭으로 바꿔타고 산소에 도착해서 간식을 나누고 성묘를 마치고 소갓재 할아버지 묘소로 가는데 소형..

즐거운우리집 2021.09.22

고려왕조실록(72) 명종 5

고려왕조실록(72) 명종 5 * 다시 바뀌는 무신정권의 주인. 이의방이 죽고 그 측근 세력들도 거의 정리가 되면서, 이제 모든 권력은 정중부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는 문하시중이 되어 문관과 무관을 통털어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게는 되었으나, 이의방을 죽인 명분을 얻기 위해, 전에 이의방에게 살해된 의종의 국상을 반포하고 의종을 고려 제18대 왕으로 복귀 시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고려 정국은 다소 안정을 찾아 가게 됩니다. 정중부, 정균, 송유인 등은 의종이 건설했던 궁궐들을 하나씩 차지하여 자기 집으로 삼는 등 안하무인인 점도 있었으나, 대체로 온건한 정치를 펼쳤으며 왕실이나 문신들과도 화해하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명종에게도 어느 정도의 권한을 보장해 주었고, 정변 이래 유명무실해져 있던 과거를..

고려왕조실록 2021.09.14

고려왕조실록 111 - 충혜왕 2

고려왕조실록 111 - 충혜왕 2 - 반쪽짜리 왕의 등극 “원나라 조정에서 우리 고려에 장차 행성을 설치할 것이라 합니다”라고 김천우가 고합니다. 행성이란 간단히 말해서 식민지를 지배할 때 식민지에 직접 통치기구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일제시대의 총독부와 같은 기구를 고려 조정 내에 설치하여 모든 조정의 업무를 직접 관장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원나라가 고려로 하여금 일본 정벌을 준비시키기 위해 설치했던 정동행성이 오로지 일본 정벌에 필요한 함선의 제작이나 군량미 조달, 군사의 징벌 등에만 국한하여 직접 관장 하였으나 장차 설치하고자 하는 행성은 고려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직접 원나라가 관장을 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충혜왕은 원나라 태사 우승상 여첩목아에게 서한을 보내 행성의 설치를..

고려왕조실록 2021.09.01

고려왕조실록 110 - 충혜왕 1

고려왕조실록 110 - 충혜왕 1 - 연산군이 형님이라 할 만한 폭군의 탄생 조선 천지를 피로 물들이며 주색과 방탕, 악정을 거듭한 끝에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연산군의 생애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산군 못지않게 악행을 행하였던 인물이 고려시대에도 있었으니 그가 곧 고려 28대왕 충혜왕입니다. 일국의 왕으로 원나라에 끌려가 귀양살이를 떠나던 중 독살된 것으로 알려진 충혜왕.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접한 고려 백성들은 그의 학정에 얼마나 신음하였던지 기뻐서 날뛰며 이제 다시 갱생의 날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소리소리 질러댈 정도였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남의 나라 땅에서 귀양살이를 하러 떠나던 중에 죽은 자신들의 왕을 비꼬는 노래가 백성들 사이에 유행을 했겠습니까. 만백성의 아버지라는 ..

고려왕조실록 2021.09.01

고려왕조실록 109 - 충숙왕 3

고려왕조실록 109 - 충숙왕 3 - 충숙왕의 귀국과 사망 원나라 왕 영종이 죽고 태정이 왕위에 오른 것은 1323년 9월 무술일이었습니다. 원나라에 잡혀있던 충숙왕에게도 기회가 찾아와 고려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집니다. 이번엔 고려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아 유배 가 있던 충선왕을 소환하는 동시에 충숙왕에게 국왕의 인장을 돌려 주며 고려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때 충숙왕은 또 원나라 위왕 아목가의 딸 조국장 공주를 새로운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고 이를 통해 원나라의 신임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된 충숙왕은 고려로 돌아오자마자 그간 자리를 비워 실추될 대로 실추된 임금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다시 왕권을 위협받게 되는데, 이는 원나라와 관계를..

고려왕조실록 2021.09.01

고려왕조실록 108 - 충숙왕 2

고려왕조실록 108 - 충숙왕 2 - 충숙왕은 원나라 공주를 사랑하지 않았다. 충선왕이 원나라로 돌아가자 충숙왕은 비로소 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에게 처음부터 원나라의 강압적인 지시가 떨어집니다. 1315년 정월 원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고려의 귀족과 천민들의 복색을 강제로 제정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한나라의 왕이면서도 타국의 지시에 따라 정치를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충숙왕에게 좌절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입는 옷마저도 간섭을 받아야 했으니 말입니다. 충숙왕은 즉위한 해인 1313년 8월 임오일 익성군 홍규의 딸을 공원왕후로 맞아 들이게 되는데 1315년 1월 정묘일에 후일 제28대 왕 충혜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왕자 정이 출생하는 경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한편 충숙왕..

고려왕조실록 2021.08.29

고려왕조실록 107 - 충숙왕 1

고려왕조실록 107 - 충숙왕 1 - 충숙왕의 즉위 그러나 상왕에 눌리다. 몸에 익은 원나라에서의 생활과 그곳에서 누리는 각종 특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전지(傳指)라는 기이한 형태로 나라를 다스리던 충선왕이 고려로 돌아가라는 원나라의 강권을 견디다 못하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줘 버리니 이가 곧 고려 27대왕인 충숙왕입니다. 충숙왕의 이름은 도, 자는 의효, 몽고 이름은 아라눅특실리였습니다. 충선왕과 몽고 여인 야속진 사이에서 1294년 7월에 둘째 아들로 태어나 5세에 강릉군 승선사가 되었고, 장성하자 강릉대군으로 책봉되었습니다. 충숙왕 역시 부친 충선왕과 함께 원나라에가 있었기 때문에 부왕과 마찬가지로 고려보다는 원나라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충숙왕에게는 동복형 세자 감이 있었는데 부친 충선왕의 ..

고려왕조실록 2021.08.29

고려왕조실록 106 - 충선왕 3

고려왕조실록 106 - 충선왕 3 - 다시 임금은 되었으나 --- 1308년 5월 즉위한 원나라 왕 무종은 자신이 정권다툼에서 승리하자 그간 충선왕이 세운 공이 적지 않았음을 들어 바로 충선왕을 원나라의 영지중 하나인 삼양왕에 봉하여 줍니다. 이로서 충선왕은 원에서도 굳건한 기반을 다질 수가 있었는데, 그해 7월 부왕이 죽자 귀국하여 다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충선왕은 복위하자마자 정치기강의 확립, 조세의 공평, 인재등용의 개방, 공신자제의 중용, 농잠업의 장려, 동성 결혼의 금지, 귀족의 횡포 엄단 등과 같은 조치 들이 담긴 혁신적인 교서를 발표함으로서 다시 한 번 개혁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충선왕의 교서는 일회성 구호에만 그치고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는데 이는 고려의 생활에 적응..

고려왕조실록 2021.08.29

고려왕조실록 105 - 충선왕 2

고려왕조실록 105 - 충선왕 2 - 충선왕의 개혁정치, 폐위, 복귀 충선왕은 왕위에 오르자 세력가들에게 땅을 빼앗겨 소작인으로 전락한 억울한 농민들의 땅을 되돌려 주도록 조치하고, 즉위와 동시에 고려사회에 팽배한 각종 폐단을 개혁하고자 30여 항목의 즉위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주로 합단의 침입 때 공을 세운 자들에 대한 보상과 조세와 부역, 죄에 대한 형벌, 지방에 묻혀있는 선비의 천거 등에 관한 내용이며 별다른 국가에 공헌도 없이 상과 관직을 제수 받은 자에 대한 재조정 등 공평한 상과 벌이 내려지도록 개혁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특수 임무를 띈 별감을 지방에 자주 파견하면서 발생하였던 민폐를 최소화 하도록 지시하였고 뇌물을 금지하고, 특히 홀치, 응방, 아가치 순마 등 원나라의 영향으로 생겨난 ..

고려왕조실록 2021.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