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89

<조선왕조실록(29)>단종 세조 7- 사육신(死六臣)

단종 세조 7 - 사육신(死六臣) 지난 회에서 본 바와 같이, 성삼문 등의 단종복위 시도는 한명회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고, 성삼문 등은 김질의 고변으로 모두 체포되어 혹독한 대가를 치루게 되었습니다. 성삼문 등을 우대했던 세조는 분에 겨워 성삼문 등을 더욱 혹독하게 고문하였으나, 성삼문 등은 끝내 그 기개를 꺽지 않았다고 합니다. 야사에서 전하는 장면을 조금만 소개합니다. - 성삼문은 세조를 “나으리”라 칭하고 나라를 도둑질했다면서 세조를 꾸짖었고, 격분한 세조가 “그러면서 왜 나의 녹을 먹었느냐”라고 하자, “나으리가 준 녹은 창고에 손도 안 대고 쌓아놓았다”라고 답했으며, 사실이 그러했다. 성삼문은 세조가 나으리란 말을 거두라며 형리로 하여금 시뻘건 인두로 몸을 마구 지지게 하자 "나으리의 고문은 참..

조선왕조실록 2021.03.27

<조선왕조실록(28)>단종 세조 6- 단종복위 시도와 혹독한 대가

단종 세조 6 - 단종복위 시도와 혹독한 대가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된 단종은 창덕궁으로 물러나 부인과 더불어 외롭고 슬픈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성삼문 등이 찾아와 복위가 멀지 않았다는 말을 하자, 단종은 감격한 마음에 성삼문과 외숙부 권자신에게 자신의 칼을 내주면서 지지를 표명하였습니다. 일말의 기대와 더불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라는 자포자기적인 생각도 있었겠지요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은 그 아비 등 가까운 지인들과 단종복위를 꽤했는데, 마침 하늘이 준 기가 막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세조가 명나라 사신을 위로하는 연회 를 여는데, 그 연회 자리에 서는 별운검에 성삼문의 아비 성승, 유응부 등이 내정된 것입니다. 별운검은 연회 ..

조선왕조실록 2021.03.25

<조선왕조실록27>단종 세조 (5)- 수양대군, 왕위에 오르다

단종 세조 (5) - 수양대군, 왕위에 오르다 수양은 계유정난 다음 날 ‘영의정부사 영경연 서운관사 겸 판이병조사’라는 이름도 꽤나 긴 전무후무한 관직에 제수되어 왕을 대신해 섭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영의정에 왕 교육 전담에 천문 책임자에 군사 책임자에 인사 책임자까지, 말하자면 이미 신하의 지위를 넘어선 것이지요. 이어서 수양은 김종서의 형제나 다름없는 이징옥을 해치우고, 공신책봉을 한 후 공신에 책봉되지 않은 종이나 시녀들에게도 통 큰 선물을 하였는데, 김종서를 철퇴로 내려친 임어을운 등 종들에게 내린 것이 김종서, 황보인 등의 집 한 채씩이었습니다. 총명한 어린 단종은 잠시라도 수양을 믿었던 자신을 탓하며, 밀려드는 두려움과 서러움을 감추어 삭이고 “모든 권한은 다 줘도 상관없다. 몇 년 만 이 자리..

조선왕조실록 2021.03.25

<조선왕조실록(26)> 단종 세조 4- 계유정난

단종 세조 4 - 계유정난 실록에 나타난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킨 결정적 명분은 안평대군과 김종서 등의 역모였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들이 역모를 꾀했을까요 단종실록에서 안평과 김종서의 역모 증거로 제시되는 첫 번째는 김종서의 측근 이징옥이 북방의 무기를 한양으로 빼돌렸다는 것인데, 안평과 김종서 등이 힘을 합쳤다면 역모사건을 조작한 후 한양의 군을 동원해 수양을 치고 단종을 압박하면 될 일이지, 대단한 것도 아닌 칼과 창 같은 무기를 굳이 북방에서 한양으로 옮길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영의정 황보인의 노비 아무개가 황보인 등의 구체적 역모계획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갖바치가 등장하는데, 어떻게 일개 종이 거사계획의 내밀한 부분까지 샅샅이 알게 되었는지는 고사하고 그 아무개 종의 이름조차 실록..

조선왕조실록 2021.03.24

<조선왕조실록(25)> 단종 세조 3- 수양과 한명회의 야망

단종 세조 3 - 수양과 한명회의 야망 단종실록에는 김종서 황보인 등 정승들이 왕위를 찬탈하여 안평을 옹립하려 했다고 되어 있으나, 늙은 정승들이 역적소리 들어가며 어린 왕을 폐하고 시퍼런 안평을 옹립해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봄이 합당합니다. 단지 왕이 어리고 왕실에 수렴청정할 어른이 없으므로 어린 왕이 성장할 때까지 나라를 맡아 관리할 수밖에 없는 대신 그룹으로서는 대군들에 의한 정변, 특히 수양의 정변 시도를 우려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최소한 보위를 넘볼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의 안평을 끌어들여 수양을 견제하려 했던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대신 그룹과 안평의 견제로 조급해진 수양은 거의 막가파식으로 자기 세력 확장에 심혈..

조선왕조실록 2021.03.24

<조선왕조실록(24)> 단종 세조 2- 단종실록, 그리고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단종 세조 2 - 단종실록, 그리고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단종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의 대표적인 옥의 티로서, 원래는 노산군일기란 이름으로 편찬되었다가 뒷날 숙종 때 이르러 단종실록으로 개칭되었으나, 그 내용에는 여전히 단종은 노산군으로, 수양대군은 세조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단종실록은 편찬 경위는 물론 편찬 일시나 편찬자의 이름 조차 나와 있지 않은데, 그 내용도 수양대군 측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단종실록의 기본 방향 및 강조점은 어리고 불안한 임금 → 김종서 등 대신들의 전횡 → 안평대군의 왕위찬탈 음모와 대신들의 결탁 → 수양대군의 영웅적인 면모와 우국충정 이렇게 되겠으나, 지나친 치우침으로 인해 오히려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이는 진실을 감추는 ..

조선왕조실록 2021.03.24

<조선왕조실록(23)> 단종․세조 1- 열두 살 임금

단종․세조 1 - 열두 살 임금 조선 제5대 임금으로 즉위한 효자 문종은 슬픔을 딛고 세종 못지않은 정치를 펴 나갔지만, 그에겐 치명적인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즉 자신의 건강과 세자의 어린 나이, 그리고 아우들 특히 수양대군의 존재였습니다. 문종은 바로 아래 동생인 수양대군의 정치적 힘과 거침없는 기질, 그리고 언뜻 언뜻 내비치는 야심이 두려웠으나, 행여 섣불리 견제하다가는 오히려 반발의 명분만 주어 정난을 불러 올 수도 있는데다, 무엇보다 그 성격상 수양을 제거하는 일 따위는 어울리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어찌 보면, 수양을 제거하기에는 수양이 너무 커 버려 오히려 문종이 수양의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종은 자신이 진정으로 수양을 아낀다면 수양 역시 다른 마음을 품지 않..

조선왕조실록 2021.03.24

<조선왕조실록(22)>세종 문종 4- 비극의 서막

세종 문종 4 - 비극의 서막 세종의 장자 “향”이 세자에 책봉된 것은 8세 때였습니다. 후일 문종 임금이 되는 세자는 아버지의 성품과 자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야 말로 성군 중의 성군이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종은 세자로 30년을 지내면서 세종으로부터 고품격의 왕위 수업을 받았으나, 즉위 2년 3개월 만에 어린 단종을 남기고 죽으니, 이것이 비극의 서막입니다. 사람들은 문종이 요절한 것으로 많이 알고 있는데, 문종이 세상을 뜬 것은 39세로 성종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요절했다는 이미지를 갖는 것은 재위 기간이 위와 같이 매우 짧았던 데다가, 어린 단종을 남기고 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에구~ 애만 좀 일직 낳았어도...) 문종은 세자 시절, 두 번의 이혼을 하고(두 번째 ..

조선왕조실록 2021.03.22

<조선왕조실록(21)> 세종 문종 3- 새로운 카리스마 그리고 한글창제

세종 문종 3 - 새로운 카리스마 그리고 한글창제 태상왕 태종이 세상을 뜸으로써 세종은 진짜 임금이 되었습니다. 태종이 죽자 신하들은 은근히 세종 길들이기를 시도했으나 세종은 이를 알고도 그대로 넘어가는 등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새로운 제왕의 리더십을 구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종에게는 세종의 부인 심씨 가문을 박살낸 사건의 전모를 새로 밝히는 방법으로 신하들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카드가 있었으나 이 카드를 끝까지 사용하지 않았고, 형님인 양녕에 대해서도 끝끝내 관용적 태도를 보였으며, 그러한 정치투쟁보다는 농업, 천문과 기상, 외국어, 악기, 북방 등 모든 분야에 있어 혁신을 기하기 위한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세종의 업적은 두루 나열하기가 벅차므로 모두 생략하고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가장 훌륭..

조선왕조실록 2021.03.22

<조선왕조실록(20)> 세종 문종 2- 역사의 아이러니

세종 문종 2 - 역사의 아이러니 이방원은 속세의 관점에서 보면, 권력의 노예이자 인간백정이라 해도 크게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정몽주를 때려 죽이고, 친동생 둘과 매제를 죽이고, 친형을 죽게하고, 마누라의 친동생 4명을 다 죽이고, 며느리의 아버지를 죽이고 며느리의 어머니와 형제를 관노로 삼았습니다. 그 외 죽어간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지요 그런데 방원이 특히 자신의 부인인 왕비 민씨와 며느리 심씨의 가문을 초토화하는 등 외척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행위를 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이것은 아버지인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가 이성계를 꼬드겨 공이 가장 큰 방원을 제치고 자기의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삼은 것이 평생의 한이자 교훈이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방원은 기어코 작은 어머니인..

조선왕조실록 2021.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