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89

<조선왕조실록(19)> 세종 문종 1 - 이중권력

세종 문종 1 - 이중권력 세종은 스물 두 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쉰둘의 팽팽한 나이에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 앉은 아버지 태종의 의중을 몰라 늘 불안했습니다. 불안하기는 대신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태종은 물러난 지 보름 만에 태종의 가신이라 할 수 있는 공신 강상인이 자신을 제치고 세종에게 군사에 관한 일을 직접 보고한 것을 문제 삼아 강상인을 고문한 후 평민도 아닌 관노로 보내버렸습니다. 이로써 권력은 여전히 태종에게 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태종은 세종의 장인 즉, 중전 심씨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사돈인 심온을 영의정에 임명하여 중국에 사신으로 보낸 후, 갑자기 위 강상인의 일에는 배후가 있을 것이라며 강상인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가혹하게 고문했고, 드디어 그..

조선왕조실록 2021.03.21

<조선왕조실록(18)> 태종 4- 양녕과 충령

태종 4 - 양녕과 충령 태종은 정비 민씨와의 사이에서 양녕, 효령, 충녕, 성령 이렇게 아들 4명을 두었습니다. 태종이 중전 민씨 일가를 몰락시키고 많은 공신들을 처치한 이유는 오로지 미래 군주인 세자 양녕대군이었는데, 양녕대군의 탈선이 만만찮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양녕은 어린 시절부터 빡빡한 군주교육을 따라가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며, 열일곱에 이르러서는 최초로 기생을 불러 통하는 등 여색을 밝히기 시작하였습니다. * 폐위되는 양녕과 세자로 책봉되는 충녕 태종은 재위기간 중 네 번에 걸쳐 선위파동을 일으킨다. 첫 번째 선위파동은 1406년에 일어났는데 이때 양녕의 나이 불과 13세였다. 어린 양녕을 대상으로 태종이 선위 표명을 한 것은 표면적으론 건강상의 문제 때문..

조선왕조실록 2021.03.20

<조선왕조실록(17)> 태종 3- 중전 민씨 영광과 불행(2)

태종 3 - 중전 민씨 영광과 불행(2) 중전 민씨 가문의 불행~~ 결론을 먼저 말하면, 중전 민씨의 친동생인 민무구, 민무질이 1차로 남편인 태종에 의해 죽고, 그로부터 6년 후 그 아래 동생들인 민무휼, 민무회 형제도 또 다시 남편인 태종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것도 민씨가 중전의 자리에 있는 가운데... 태종의 입장에서 볼 때, 장인인 민제는 보수파의 핵심인물로서 따르는 이가 많고, 처남인 민무구와 민무질은 군사 부분의 실세들, 그리고 대궐의 안주인 왕비, 여기에다 무엇보다 원자가 외가에서 자란까닭에 외삼촌인 민씨 형제와 매우 가까웠고, 나중에 원자가 세자를 거쳐 보위를 이을 경우 민씨 일가의 힘은 통제불능일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민씨 형제들이 죽게 되는 과정은 매우 복잡했는데, 그 중..

조선왕조실록 2021.03.20

<조선왕조실록(16)> 태종 2- 중전 민씨 영광과 불행(1)

태종 2 - 중전 민씨 영광과 불행(1) 타고난 자질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미 여기에 왕이라는 압도적 지위에다 명으로부터 왕위까지 승인 받게 된 방원의 정치적 파워는 막강 그 자체였습니다. 이러한 방원에게 마지막 남은 과제는 사냥이 끝난 후의 사냥개 처리와 길들이기, 그리고 향후의 왕권강화를 장기포석이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향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공신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는 등 왕권강화를 위한 박차를 가하였는데, 그 중 가장 기가 막힌 것은 중전 민씨 가문의 대몰락이었습니다. 태종의 부인 중전 민씨는 18세에 방원과 결혼하여 시아버지가 왕이 되는 것을 목격했고, 타고난 여장부 기질로 방원이 왕이 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중전 민씨는 민무구, 민무질 두 동생을 남편의 심복으로 만들고 1,2..

조선왕조실록 2021.03.20

<조선왕조실록(15)> 태종 1-이성계의 회한과 죽음

태종 1 -이성계의 회한과 죽음 이방원은 앞서 본 바와 같이 두번의 난을 거쳐 34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그에건 치명적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정통성 문제였습니다. 지존의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정통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노태우 부인 김옥숙이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이순자에게 평생을 형님대접을 하다가,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열린 축하연에서 "우린 국민의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니 그전과는 다릅니다"라고 하여 이순자의 속을 뒤집어 버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정상적인 계승이 아니라 형제들을 쳐죽이고 애비에게 씻을수 없는 불효를 한 채 왕이 된 이방원을 백성들이 곱게 볼 리 없었고, 이방원에게 이런 정통성의 부재는 평생의 약점이었습니다. 이방원은 이런 정통성 부재의 약점을 씻고자 이성계에게 정성을 ..

조선왕조실록 2021.03.18

<조선왕조실록(14)> 태조 5- 1차 왕자의 난, 기록과 진실

태조 5 - 1차 왕자의 난, 기록과 진실 실록은 왕자의 난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 정도전 등이 임금의 병을 핑계로 왕자들을 대궐로 불러들인 다음 궁궐노비, 갑사 등을 동원하여 공격하고 자신들도 밖에서 응하기로 계획하였다. - 이윽고 왕자들이 궁궐 앞에 이르렀는데, 이방원은 궁문 앞에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것으로 위험한 형세를 짐작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숙번, 조영무 등 40여 명을 무장시켜(부인 민씨가 감추어 두었던 무기, 그나마 충분치 않아 창을 꺽어 둘로 나누어가지고, 10여 명은 몽둥이를 들었다) 광화문 앞으로 내달았는데, 세자가 이방원 등의 군세에 놀라 전의를 상실하였다. - 당시 정도전 등은 남은의 첩 집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방원 등이 찾아가 집에 불을 지르고, 울..

조선왕조실록 2021.03.18

조선왕조실록(13) 태조 4 - 위기는 곧 기회

조선왕조실록(13)》태조 4 - 위기는 곧 기회 실록에는 정도전이 명나라의 입조 요구에 저 하나 살자고 요동정벌을 기도했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너무 단순하고 피상적이어서 사실이 아닐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해석입니다. 어렵게 명나라를 세워 나라의 기틀을 힘들게 잡아가고 있던 주원장의 입장에서 볼 때, 당시 국방강화를 외치는 정도전의 주장대로 조선이 실제로 요동을 친다면, 인근의 여진족과 북으로 밀려간 원나라가 들썩일 것이며 이렇게 되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여진족이 약 200년 후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를 세우게 되는 것을 보면, 주원장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주원장은 몽고제국에 맞섰던 조선의 민족성과 이성계의 영웅..

조선왕조실록 2021.03.17

<조선왕조실록 12> 태조 3- 명나라와의 갈등

태조 3 - 명나라와의 갈등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립이 서서히 표면화되어 가고 있던 가운데, 명나라와의 갈등이 조선 정국에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명나라 조폭출신 주원장은 장자인 황태자의 앞날을 위해 10여 년 전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더니 최고 공신을 비롯해 무려 1만 명이 넘는 공신을 도륙하는 대학살을 자행했으나, 그 일 이후 황태자가 죽어버렸고, 주원장은 이번엔 황태자의 아들을 위해 다시 대숙청을 단행하니 이번에 죽은 이도 1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명나라 주원장은 조선에 대해 위협과 트집을 거듭하고, 조선의 사신을 죽기 직전까지 패서 쫒아버리는 등 도를 넘게 괴롭히다, 급기야 조선의 왕자를 입조시켜 현안을 해명하라는 요구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이성계는 부득이 이방원을 명나라에 ..

조선왕조실록 2021.03.17

<조선왕조실록 11> 태조 2- 이성계와 정도전의 우정, 그리고 이방원의 절치부심

태조 2 - 이성계와 정도전의 우정, 그리고 이방원의 절치부심 이성계는 체제를 정비하면서 동시에 향후 화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왕씨들의 씨를 말리겠다는 듯이 이런 저런 사건을 만들어 왕씨들을 집단적으로 죽이고, 고려의 진짜 마지막 왕 공양왕도 교살했습니다. 야사에는 이 때 왕씨들은 전(全)씨나 옥(玉)씨로 성을 바꾸어 자손을 이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신하들의 거듭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처럼 실록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성계가 막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다, 이성계 자체가 위화도 회군을 강행하고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국 4년 만에 한양 천도를 단행할 정도의 강단이 있는 인물인 점을 고려하면, 실록의 이성계에 대한 기술은..

조선왕조실록 2021.03.17

조선왕조실록 (10)- 태조1- 조선 개국과 대재앙의 씨앗 잉태

태조-1 - 조선 개국과 대재앙의 씨앗 잉태 이성계는 정도전과 의기투합한 지 10여 년 만에 고려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이성계는 즉위한 후 명나라 주원장이 낙점한 조선이라는 국호(1.조선 2.화령 중 하나를 정해달라고 한것임)로 새나라를 출범시키고, 이숭인 등 정몽주의 측근 8명의 학자를 곤장으로 쳐 죽이는 등 반혁명세력의 핵심분자들을 가차 없이 제거함과 아울러 공이 있는 자들을 개국공신으로 임명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공이 누구 못지않게 큰 이방원 등 그 아들들을 하나도 공신으로 선정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세자책봉 문제와 더불어 훗날 벌어질 엄청난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이성계는 부인이 둘 있었는데, 첫째 부인은 6남 2녀를 남긴 후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사망했고, 둘째 부..

조선왕조실록 2021.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