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129

고려왕조실록 40 - 현종 2

고려왕조실록 40 - 현종 2 * 왕조의 기틀은 다졌으나 또다시 거란의 침공을 받다. 건국 초에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를 통하여 국가의 기본 방향이 일단계로 정비된 시기는 성종 때였으며, 목종 대에서는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다가 현종 대에 이르러 상당한 기틀을 다졌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현종은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먼저 고려 내부에서 이루어진 치적을 보면, 호족세력을 직접 지배하기 위한 통제 책을 마련하였으며 군현제를 완성하였다는 점이 눈에 띄는 치적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즉, “경-목-도호-군-현-진” 이라는 군현제의 기본체제가 완성된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현종은 군현제를 유지하고자 각 군현의 호장 등 향리의 규정, 향리의 공복을 제정하기..

고려왕조실록 2021.07.23

고려왕조실록 39 - 현종 1

고려왕조실록 39 - 현종 1 * 현종의 등극과 사회질서의 회복 앞장에서 잠시 봤드시 迂餘曲折을 겪은 끝에 고려 제8대 임금으로 등극한 현종은 이름이 순(詢)이고 자는 안세(安世)이며, 태조 왕건의 여덟째 아들인 왕욱과 헌정왕후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헌정왕후는 친언니 천추태후와 마찬가지로 고려 5대 임금인 경종의 부인이 되었다가 경종이 죽자 궁궐 밖에 나와서 살았는데 숙부인 왕욱과 정분을 통하게 되고 그 결과 생긴 말하자면 근친간의 불륜의 씨앗이었습니다. 아버지 왕욱이 임금의 부인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성종에 의해 사수현으로 유배 길에 오른 뒤에, 어머니 헌정왕후는 현종을 낳다가 산욕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때가 992년 성종2년 7월 임진일 이었습니다. 졸지에 고아가 된 현종은 잠시 궁중에서 ..

고려왕조실록 2021.07.23

고려왕조실록 38 - 목종 4

고려왕조실록 38 - 목종 4 * 목종의 죽음 옛 임금들은 가뭄이 드는 등 자연재해가 찾아들면 두려운 마음으로 하늘에 빌거나 모든 것을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여기며 죄수들을 방면하는 등 어느 정도 미신에 집착하는 나약한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는 목종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006년 9월 무술일 천성전의 대마루 장식물에 낙뢰가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1009년 정월 경오일에는 숭교사에 다녀오는 도중에 갑자기 폭풍이 불어 일산대가 꺾기는 해프닝이 일어나고, 임오일에는 상고전에 관등을 하던 중 기름 창고에 불이 나서 천추전이 완전히 불타버리는 사고를 연속으로 겪게 됩니다. 단순한 사고 정도로 여기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였으나 심약한 목종은 이 사건들에 대한 근심걱정으로 병을 얻고 맙니다. ..

고려왕조실록 2021.07.23

고려왕조실록 37 - 목종 3

고려왕조실록 37 - 목종 3 * 왕가의 불륜과 목종의 죽음 앞서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사이에서 불륜의 씨앗이 태어난 바를 기술한 바가 있었습니다. 하나를 가지면 두개가 욕심나고,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 했습니다. 지금도 임금 못지않은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김치양은 천추태후와 자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권좌에 올려놓고 싶은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의 왕위계승은 태조 왕건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씨가 아니면 꿈도 꾸기가 어려운 사회 분위기이었으나 목종이 다음 왕위를 이어갈 왕자를 얻을 가망이 거의 없어 보이므로 김치양은 야망을 버리지 않고 기회를 엿보기만 합니다. 당시 김치양과 천추태후로서는 자신들의 아들..

고려왕조실록 2021.07.23

고려왕조실록 36 - 목종 2

고려왕조실록 36 - 목종 2 * 목종의 절망과 타락 목종은 자신의 나이가 어려 대신에 정사를 돌보는 어머니 헌애왕후가 하는 일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자신을 대신하여 국정을 돌보는 어머니에게 감사의 표시로 천추태후로 그녀의 위상을 높여 주었습니다. (사실은 김치양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겠지만 --.) 그러던 어느 날 강직하고 지혜로운 시중 한인공이 목종을 찾아와 천추태후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벌이는 불륜행위와 김치양의 부정부패를 고하고, 일가친척이라도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천추태후의의 숙소인 태후전을 제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그를 처벌할 것을 아뢰지만, 목종은 어머니가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김치양의 벼슬을 합문사인 이라는 벼슬까지 내려 궁중을 무상출입 할 수 ..

고려왕조실록 2021.07.23

고려왕조실록 35 - 목종 1

고려왕조실록 35 - 목종 1 * 목종의 즉위와 어머니 헌애왕후의 불륜 목종은 980년 경종과 경종의 제3비인 헌애왕후 황보씨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름은 송(誦), 자는 효신(孝伸)이었습니다. 목종은 경종의 사망 당시 2살에 불과하여 왕위를 잇지 못하고 당숙인 성종이 물려받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비록 성종이 아들이 없어 목종에게 선위가 되었으나 살육을 동반하며 왕위를 빼앗고 빼앗기는 왕조의 역사를 볼 때, 성종의 인자하고 욕심이 없는 성품은 찬양받아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목종은 성품은 착하고 의기가 굳세어서 어려서부터 임금의 도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에 욕심이 많은 어머니 그늘에서 자라다 보니 다소 나약한 성격으로 변하였고, 술을 좋아하고 사냥을 즐겼습니다. 어느 임금이든 즉위 ..

고려왕조실록 2021.07.23

고려왕조실록34 - 성종 5

고려왕조실록34 - 성종 5 * 서희,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다. 국서를 가지고 거란의 영문에 도착한 서희는 먼저 통역에게 회견하는 절차를 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소손영은 거만하게 “내가 대국의 지체 높은 귀인의 신분이지만 모처럼 온 손님이니 내 친히 뜰 마당까지는 나가는 호의를 보이겠으나 고려의 화통사는 나에게 큰절을 올려야 하느니라.” 서희는 기가 막혔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대할 때 당하에서 절을 하는 것은 예법에 있는 일이나 양국의 대신들이 대면하는 자리에서 어찌 그리 부당한 요구를 하는가.” 하고 답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소손영은 재차 삼차 절을 하라고 고집을 하지만 서희는 꿈쩍도 하지 않고 숙소로 들어가 버립니다. 내심 서희의 인품이 비범함을 알아본 소손영은 결국 당상에서 대등하게 대면하는 ..

고려왕조실록 2021.07.20

고려왕조실록 33 - 성종 4

고려왕조실록 33 -성종4 * 거란과의 전쟁 -2 성종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난상토론을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수도로 돌아가시고, 대신 한명으로 하여금 군대를 인솔하고 가서 투항을 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선 서경 이북의 땅만을 적에게 넘겨주고 황주로부터 철령에 이르는 경계선으로 국경을 정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 것으로 사료 되옵나이다.” 신하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책이라는 것이 대부분 이러하였습니다. 이에 성종은 신하들의 의견에 따라 서경 창고에 쌓아 두었던 쌀을 주민들에게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쌀이 많이 남자, 성종은 이 쌀들이 거란의 궁량미로 이용될 것을 우려하여 대동강에 버리라고 명하였습니다. 이에 서희가 참지 못하고 나서서 “식량이 넉넉하면 성을 가히 지킬 수 있고..

고려왕조실록 2021.07.20

고려왕조실록 32 - 성종3

고려왕조실록 32 - 성종3 * 거란과의 전쟁 -1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거란과 고려 간에는 전쟁의 가능성이 늘 상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거란이 고려를 대등한 정도의 경쟁국으로 여긴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단지 거란의 입장에서는 송나라와의 전쟁이 가장 중요한 현안이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고려와의 싸움에 국력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뿐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직은 송나라보다 국력이 처지는 거란으로서는 고려가 송과 손잡고 자신들과 맞서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고려와는 외교적으로 풀어가기를 바랐던 것뿐입니다. 그런데 991년 10월 압록강 밖의 고려 영토를 차지하고 살고 있던 여진족들을 고려에서 쫓아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고려와 거란 사이에 끼어있어 완충역할을 해주고 있었는데 이..

고려왕조실록 2021.07.20

고려왕조실록 31 - 성종 2

고려왕조실록 31 - 성종 2 * 다져지는 나라의 기틀 국가체제 정비에 힘을 쏟기 시작한 성종은 우선 중앙권력이 미치지 못하여 토호들의 횡포가 잦은 지방의 제도부터 정비를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983년 성종2년에 이루어진 12목 설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전국을 12개 목으로 나누고 임금이 파견한 관리가 다스리도록 하였으니 이는 고려가 개국한 이래 바야흐로 임금이 지방까지 완전히 장악한 정치를 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후 995년에는 전국을 10도제로 개편하여 절도사 체제를 구축하고 지방호족들을 더욱 강력하게 통제함으로서 중앙집권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됩니다. 또한 지방교육과 경제정책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경학박사(經學博士)와 의학박사(醫學博士)를 1명씩 뽑아 12목에 각각 파견하는 등 지방교육..

고려왕조실록 2021.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