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129

고려왕조실록 50

고려왕조실록 50 - 선종 2 * 대각국사 2 1097년(숙종 2) 2월에 국청사(國淸寺)가 완성되자, 같은 해 5월에 초대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강의하였다. 이때 처음으로 천태종의 개립을 보게 되었으며, 그 뒤 1099년에는 제1회 천태종의 승선(僧選)을 행하고, 2년 후에는 국가에서 천태종 대선(大選)을 행하였습니다 이로써 천태종은 세상에서 공인된 한 종파가 된 것입니다. 의천은 원래 화엄종 계통의 승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천태교학을 열심히 연구하고 천태종을 개립하게 된 까닭은 천태의 근본사상인 회삼귀일(會三歸一)과 일심삼관(一心三觀)의 교의로써 국가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선(禪)과 교(敎)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고려의 불교는 선·교 양종의 대립이 심각하였고, 의천은..

고려왕조실록 2021.07.28

고려왕조실록 49 - 선종 1

고려왕조실록 49 - 선종 1 * 대각국사 1 1083년 10월, 3개월 사이에 아버지와 형을 잃고 경황이 없는 가운데 왕위에 오른 선종은 큰 변화보다는 기존의 인물들과 협조의 체제를 택합니다. 전왕들이 정치, 국방, 문화, 사상 등 모든 분야에서 워낙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다져 놓았기 때문에 변화보다는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더 유익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즉위 이듬해인 1084년 정월 보제사의 승려 정쌍 등이 선종에게 승과에 관한 의견을 아뢰었습니다. “아홉 개의 절간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중들을 진사 규정에 준하여 3년에 1차씩 승직에 선발하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이는 곧 승려가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이었습다. 선종은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3년에 한 번씩 승과를 치..

고려왕조실록 2021.07.28

고려왕조실록 48 - 순종

고려왕조실록 48 - 순종 * 왕위에는 올랐으나.... 1046년 12월 9일, 선왕 문종의 맏아들로 태어난 순종(順宗)은, 이름은 훈(勳), 자는 의공(義恭)으로 언제 태자가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그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 문종이 왕위에 오른 걸로 봐서 꽤나 오랜 기간을 태자의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태자 시절부터 몸이 나약했던지라 이래저래 부왕과 신하들의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문종이 죽자 너무 슬퍼한 것이 탈이 되어 안 그래도 원래부터 병약한 몸이 더 악화되어 3개월 만에 결국 부왕의 뒤를 따라가고 맙니다. 1083년 7월 18일 ~ 1083년 10월 23일 너무나 짧은 재위 기간인지라 아무런 업적도 없이 가버려 그의 동생 국원공 왕운(선종, 宣宗)이 엉겁결에 왕위에 오..

고려왕조실록 2021.07.26

고려왕조실록 47 - 문종 3

고려왕조실록 47 - 문종 3 * 고려의 자존심, 불교와 유교의 융성 1055년 7월 초하루였습니다. 도병마사가 다음과 같은 장계를 올립니다. “전날 압록강 지역을 우리 고려영토로 한다는 것을 거란에서도 인정을 한 바가 있으나 그들이 최근에는 압록강에 다리까지 가설하며 점차 옛날 경계선을 넘어오고 있고 오늘에 와서는 우정(郵亭)까지 설치하여 우리 영토를 침식하고 있으니 마땅한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이에, 예전 같으면 이러한 일로 사신을 보내면 거란 조정에서 군사를 일으켜 무력시위라도 할까 두려워 잠잠히 있었을 것이나 이번엔 달랐습니다. 문종은 비약적으로 강대해진 국력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사신을 보내 옛 지역을 돌려주고 동시에 성벽, 보루, 궁구란자[弓口欄子 ; 돌이나 목책으로 ..

고려왕조실록 2021.07.26

고려왕조실록 46 - 문종 2

고려왕조실록 46 - 문종 2 * 문종의 치적 (2) 1076년(문종30)에는 양반전시과(兩班田柴科)가 다시 정해져 고려 전기의 토지법이 최종적으로 완비되었습니다. 또한 녹봉제도가 문무백관 및 유역인(有役人)들에게도 실시되었는데, 이것은 모두 집권적 지배체제의 물질적 토대가 정비되어감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1077년(문종 31)에는 선상기인법(選上其人法)이 제정되었습니다. 또한 양반의 지위를 확고히 해주기 위해서 남반직(南班職 : 문반과 무반에 들지 못하는 중류계급의 반열)의 최고 계급을 종래의 4품위(品位)에서 7품위로 낮추어 격하 시켰는데, 이는 문무양반에 비해 남반이 천시된 결과이며 양반관료의 신분적 우월성을 정착시키게 된 것입니다. 한편 대외관계는 1050년·1052년·1064년·1068..

고려왕조실록 2021.07.25

고려왕조실록 45 -문종1

고려왕조실록 45 -문종 1 * 문종의 등극과 치적 (1) 고려시대의 최고의 황금기라 일컬어지는 고려의 제10대 문종 임금이 등극하여 치세를 시작한 것은 1046년 5월 이었습니다. 문종은 고려 제8대 임금인 현종과 제3왕비인 원혜태후와의 사이에 셋째 아들로 1019년 12월에 출생하였습니다. 문종은 등극하자마자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용상과 이불 요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은 명을 내립니다. “돌아가신 선왕께서 사용하시던 용상과 발돋움은 전부가 금은으로 장식되어 있고 이불과 요 또한 금은실로 짠 계금으로 만들었으니 담당관리로 하여금 견직으로 고치게 해야 할 것이다” 문종의 소박하고 검소한 성품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문종은 토론을 통한 국사의 결정을 즐겨하여 수시로 당면 정책의 옳고 그름을 논..

고려왕조실록 2021.07.25

고려왕조실록 44 - 정종 3

고려왕조실록 44 - 정종 3 * 새로운 제도들... 정종은 천자수모법에 이어, 과거제도를 재정비하여 1045년에는 악공(樂工)과 각 관아의 말단 에 속하는 잡류(雜類), 오역(五逆), 불충(不忠), 불효한 자와 향(鄕)과 부곡(部曲, 천민부락)인의 자손은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오역은 부모를 죽인 자, 파계하였거나 수행하는 자를 죽인 자, 출가하여 몸에 피를 묻히는 자 등을 말합니다. 또한 재위 마지막 해인 1046년에는 장자상속과 적서의 구별을 법으로 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정종의 재위기간에는 자연재해가 참 많았습니다. 먼저 지진의 기록을 보면 1035년 6월에 개경에 지진이 났고, 8월과 9월에는 개경과 동경(경주)지방 19개 주에서 지진이 났는데 마치 우레와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왕조실록 2021.07.24

고려왕조실록 43 - 정종 2

고려왕조실록 43 - 정종 2 * 천리장성의 축조와 노비제도 정립. 고려 후기의 대학자 이재현의 평을 보면 정종이 거란과 화친을 맺은 것은 진심으로 그리한 것이 아니고 기묘한 책략이었다고 단정을 짓고 있습니다. 단지 선대 임금의 유업을 계승하여 국가를 보전하고자 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정종은 거란과 우호관계가 회복되었음에도 덕종 대에 시작된 천리장성의 축조공사를 계속 추진하여 완성을 시킵니다. 압록강에서 동해의 도룡포까지 장성이 완성되자 고려는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습니다. 이는 고려의 군사력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정종은 이러한 안정감 속에서 새로운 제도들을 속속 도입하게 됩니다. 정종은 1039년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을 제정하여 노비의 신분이나 종사하..

고려왕조실록 2021.07.24

고려왕조실록 42 - 정종1

고려왕조실록 42 - 정종1 * 실리 외교를 추구하다 정종은 이름은 형(亨)이요, 자는 신조(申照)로 동복의 형 덕종으로부터 유언을 받아 1034년 9월 17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정종은 등극하자 전국에 대 사면령을 내리고 치세의 틀이라고 할 관료들의 직위와 인물을 새롭게 선정하였습니다. 이때 정종에 의해 중용된 인물 중 황주량과 최제안이 있는데, 황주량은 거란의 침입으로 소실된 역대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여 덕종1년 1032년에 태조에서 목종에 이르는 칠대실록 36권을 완성시킨 사람으로 한림원과 사관의 요직을 두루 지냈으며 과거를 주관하기도 하였습니다. 최제안은 1020년 현종 11년 천령절을 하례하려고 거란에 다녀 온바가 있었으며 태조의 훈요십조가 병화로 망실되었을 때 최항의 집 서고에서 이를 ..

고려왕조실록 2021.07.24

고려왕조실록 41 - 덕종

고려왕조실록 41 - 덕종 * 왕조의 기틀은 다졌으나, 요절하다. 1031년 현종22년에 16세의 어린 나이에 고려 제9대 임금에 오른 덕종은 어린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너그럽고 총명하며 민첩하게 나라를 이끌어 갔습니다. 선왕 현종의 제3비 원성왕후 김씨의 소생으로 5남 8녀나 되는 현종의 자녀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덕종은 이름은 흠(欽)이요, 자는 원량(元良)입니다. 영민하고 너그러운 덕종이 왕위에 오르자 만백성이 기뻐하였으나 다만 그의 몸이 병약하여 과중한 업무를 감당할 수가 있을까 염려들이 많았습니다. 고려의 왕으로서 본격적인 치세를 시작한 덕종은 조정의 인사개편을 단행하여 문무백관들을 대폭적으로 물갈이 함으로써 새로운 정치를 위한 틀짜기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거란의 사신 남승..

고려왕조실록 2021.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