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129

고려왕조실록 99 - 원종 4

고려왕조실록 99 - 원종 4 -삼별초의 난과 원종의 죽음 그해 12월 쿠빌라이의 부름으로 원종이 몽고에 가게 되었는데 안경공 창과 임연도 동행 할 것을 명받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느낀 임연은 자기 대신 아들 임유무를 보내는데 그마져도 두려움에 사로 잡혀 병을 얻게 됩니다. 그의 근심과 두려움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결국 그것이 병이 되어 죽고 맙니다. 이리하여 교정별감 자리는 아들 임유무에게 돌아가게 되었는데 권력을 차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아무래도 애비인 임연보다는 카리스마가 부족할 게 뻔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원종은 몽고의 요구대로 개경 환도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모든 대신 문무관 들은 물론 그 가족들 그리고 강화로 건너간 일반 백성들까지도 모두 원위치하라고 명합니다. 이에 임유는 참모회..

고려왕조실록 2021.08.21

고려왕조실록 98 - 원종 3

고려왕조실록 98 - 원종 3 - 권신의 손에 원종 폐위되다. 한편 몽고는 1268년 3월 송나라 정벌을 준비하면서 고려에 원병과 병선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에따라 쿠빌라이는 김준(김인준)과 그의 아우 김충으로 하여금 모든 준비를 갖추어 연경으로 입조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몽고에 들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김준은 원나라 사신을 죽이고 원종마저 제거해 버리려합니다. 그러나 김충의 반대로 김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김준은 동생과 같이 원나라에 다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김준의 행동거지가 못마땅한 원종은 임연에게 김준을 죽이라고 넌지시 이릅니다. 이에 임연은 김준과 김충 형제를 죽여 버립니다. 그러나 김준 형제가 죽었다고 원종에게 왕권이 넘어온 것은 아닙니다. 정권을 잡은 임연이 그 ..

고려왕조실록 2021.08.20

고려왕조실록 97 - 원종 2

고려왕조실록 97 - 원종 2 - 원종 갈팡질팡. 1260년 2월 계해일 원나라에서 고려로 돌아오던 원종은 동행하던 원의 장수 야속달로부터 3월 상순까지는 강화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개경으로 나와야 한다는 강압적인 말을 들은 이래 계속되는 개경 환도를 요구하는 원나라의 독촉에 전체 관헌과 백성 승려로 하여금 개경에 집을 지으라고 명령한바가 있습니다. 이에 폐허로 남아 있던 개경에는 궁궐을 비롯하여 사찰과 가옥 등의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화에 뿌리를 내리고 30년째 살아오며 모든 권세를 틀어쥐고 있는 김준과 그 측근들은 이미 감을 잡고 있었습니다. 원나라를 등에 업고 개경천도와 함께 원종이 왕권을 행사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이는 무신정권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원종의 ..

고려왕조실록 2021.08.20

고려왕조실록 96 - 원종 1

고려왕조실록 96 - 원종 1 - 원종의 등극 고종이 죽자 대장군 김준은 안경공 창을 추대하여 왕위를 잇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신들은 맏아들이 왕위를 잇는 것이 통례이며 더구나 태자가 몽고에 볼모로 들어가 있는데 그 아우를 임금으로 삼을 수 없다고 극렬히 반대하고 나서는데다가, 고종이 죽기 전에 남긴 조서를 가지고 반드시 태자 전이 왕위에 등극해야 함을 주장하자 아무리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김준이라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못하게 됩니다. 고종의 조서에는 분명히 태자 전이 왕위를 잇도록 하고 태자가 몽고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손자와 상의를 하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태자 전은 몽고에 머문 채 왕위를 이어받게 되니 그가 바로 고려 24대왕 원종입니다. 나라의 힘이 부족하여 오랜 기간..

고려왕조실록 2021.08.19

고려왕조실록 95 - 고종 10

고려왕조실록 95 - 고종 10 - 몽고와의 전쟁이 끝나다. 한편 공납까지 중지하며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않는 고려의 태도를 보다 못한 몽고는 1257년 5월 또다시 침공을 해 옵니다. 6월에 서경에 이른 몽고군은 고종이 친히 나와 군사를 맞이하되 태자를 몽고에 볼모로 보내야만 철군하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고심 끝에 고종이 태자를 몽고에 보내기로 결정하자 몽고군은 바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고종은 아무래도 태자를 몽고에 보내는 것이 불안했던지 11월 계측일에 4품 이상 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태자를 몽고에 보낼 것인가 아니면 어찌 몽고군을 막아낼 것인가를 토의하게 됩니다. 결론은 바로 나왔습니다. 태자 대신에 그의 동생 안경공 창을 몽고에 다시 보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듬해 3월 김준과 유경 등..

고려왕조실록 2021.08.19

고려왕조실록 94 - 고종 9

고려왕조실록 94 - 고종 9 - 김준(金俊, 김인준)의 집권 -2 김준의 처음 이름은 김인준(金仁俊)이었습니다. 그 아비 김윤성(金允成)은 본래 천한 노비로 자기 주인을 배반하고 최충헌의 노비로 들어가 김준과 김승준(金承俊)을 낳았습니다. 김준은 용모가 늠름하고 성품이 관후했으며 아랫사람에게도 겸손히 대했습니다. 또 활을 잘 쏘고 남에게 잘 베풀어 인심을 얻었습니다. 김준의 성격을 요즘말로 표현하면 사람 좋고, 허세 부리기도 좋아하고, 또 마당발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은 비천한 신분 출신이면서도 여러 신분의 사람들과 두루 친분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과 사를 엄중히 구별할 줄 모르는 성격이었고, 날마다 의리를 뽐내는 젊은이들과 몰려다니면서 술을 들이키는 통에 집에 재산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그러한..

고려왕조실록 2021.08.19

고려왕조실록 93 - 고종 8

고려왕조실록 93 - 고종 8 - 김준(金俊, 김인준)의 집권 -1 그런데 그즈음 고려 내부에는 아주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1257년 최항(崔沆)이 죽고 그의 아들 최의(崔竩)가 무신 정권을 이어 받게 됩니다. 그런데 최의는 무신정권을 이끌만한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다 보니 그의 집권과 동시에 최씨 무신정권의 종말이 시작되게 됩니다. 최항은 죽기 전에 아들 최의를 미리 세 사람에게 부탁해 놓았는데, 그들은 유능(柳能), 선인열(宣仁烈), 최양백(崔良伯)이었습니다. 이들은 최항 사후에 최의가 차질 없이 권력을 승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유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재상을 지낸 유력 가문집안 출신이고, 선인열의 가문은 불확실하지만 문관 출신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즉 유능과 ..

고려왕조실록 2021.08.19

고려왕조실록 92 - 고종 7

고려왕조실록 92 - 고종 7 - 몽고의 5차 침입. 수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고려와 몽고 간에는 사신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요즈음도 국가간에 전쟁을 하는 와중에도 상호 간에 핫라인은 열어놓고 있듯이 당시에도 비상대화 채널은 항상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전쟁의 와중에도 1251년 11월에 몽고 사신 장곤과 홍고이가 40여명을 이끌고 와서 고종의 친조를 요구하였으며 이후에도 몽고는 몇차례 사신을 파견하여 개경 환도와 고종의 친조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그동안 최우가 내세운 대몽고 강경론에 기인한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그런 와중에 1249년 최우가 병사를 하게 되자 당시 최우의 아들 최항은 송광사에 출가하여 중이 되었는데, 그는 부친의 병환..

고려왕조실록 2021.08.17

고려왕조실록 91 - 고종 6

고려왕조실록 91 - 고종 6 - 3차, 4차 몽고와의 전쟁 고려에서 패퇴한 직후에 몽고는 주위의 동진국과 금을 정벌하는데 힘을 기울이느라 미처 고려에 신경을 쓰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고려는 약 2년 동안 몽고의 침입을 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몽고는 1233년과 그 이듬해 동진국과 금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계속해서 남송을 공격하는 한편, 1235년부터 다시 고려를 침략하게 됩니다. 드디어 3차의 몽고 침략이 시작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의 침략은 살리타가 살해 당한 것에 대한 보복과 전날의 패퇴에 대한 앙가픔의 성격을 강하게 띠어, 몽고군은 고려에 화의를 교섭해오는 일이 없이 경상·전라도까지 침입하여 전국토를 유린하게 됩니다. 이에 고려에서는 개주·온수(온양)·죽주(죽산)·대흥(예산) 등..

고려왕조실록 2021.08.17

고려왕조실록 90 - 고종 5

고려왕조실록 90 - 고종 5 - 강화도 천도와 2차 몽고와의 전쟁 이렇듯 고려는 몽고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또다시 이어질지도 모르는 몽고의 침략을 방어할 방법을 모색해 나갑니다. 한편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화가 치밀대로 치민 살리타는 지의심을 포함한 고려의 사신들을 잡아 본국으로 압송하여버립니다. 이리하여 또다시 몽고와 고려 간에 전운이 감돌자 집권자 최우는 몽고와의 일전을 각오하고 고종을 위협하여 1332년 6월 강화로 도읍을 옮기게 됩니다. 강화로 도읍을 옮긴 이유는 몽고는 유목 민족으로 바다를 두려워하여 수전(水戰)에 취약한 몽고군의 약점을 이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강화에 궁궐을 짓고 대신과 관리들 그리고 일부 백성들을 이주시켜 장기전에 대비하게 됩니다. ..

고려왕조실록 202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