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129

고려왕조실록 109 - 충숙왕 3

고려왕조실록 109 - 충숙왕 3 - 충숙왕의 귀국과 사망 원나라 왕 영종이 죽고 태정이 왕위에 오른 것은 1323년 9월 무술일이었습니다. 원나라에 잡혀있던 충숙왕에게도 기회가 찾아와 고려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집니다. 이번엔 고려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아 유배 가 있던 충선왕을 소환하는 동시에 충숙왕에게 국왕의 인장을 돌려 주며 고려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때 충숙왕은 또 원나라 위왕 아목가의 딸 조국장 공주를 새로운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고 이를 통해 원나라의 신임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된 충숙왕은 고려로 돌아오자마자 그간 자리를 비워 실추될 대로 실추된 임금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다시 왕권을 위협받게 되는데, 이는 원나라와 관계를..

고려왕조실록 2021.09.01

고려왕조실록 108 - 충숙왕 2

고려왕조실록 108 - 충숙왕 2 - 충숙왕은 원나라 공주를 사랑하지 않았다. 충선왕이 원나라로 돌아가자 충숙왕은 비로소 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에게 처음부터 원나라의 강압적인 지시가 떨어집니다. 1315년 정월 원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고려의 귀족과 천민들의 복색을 강제로 제정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한나라의 왕이면서도 타국의 지시에 따라 정치를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충숙왕에게 좌절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입는 옷마저도 간섭을 받아야 했으니 말입니다. 충숙왕은 즉위한 해인 1313년 8월 임오일 익성군 홍규의 딸을 공원왕후로 맞아 들이게 되는데 1315년 1월 정묘일에 후일 제28대 왕 충혜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왕자 정이 출생하는 경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한편 충숙왕..

고려왕조실록 2021.08.29

고려왕조실록 107 - 충숙왕 1

고려왕조실록 107 - 충숙왕 1 - 충숙왕의 즉위 그러나 상왕에 눌리다. 몸에 익은 원나라에서의 생활과 그곳에서 누리는 각종 특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전지(傳指)라는 기이한 형태로 나라를 다스리던 충선왕이 고려로 돌아가라는 원나라의 강권을 견디다 못하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줘 버리니 이가 곧 고려 27대왕인 충숙왕입니다. 충숙왕의 이름은 도, 자는 의효, 몽고 이름은 아라눅특실리였습니다. 충선왕과 몽고 여인 야속진 사이에서 1294년 7월에 둘째 아들로 태어나 5세에 강릉군 승선사가 되었고, 장성하자 강릉대군으로 책봉되었습니다. 충숙왕 역시 부친 충선왕과 함께 원나라에가 있었기 때문에 부왕과 마찬가지로 고려보다는 원나라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충숙왕에게는 동복형 세자 감이 있었는데 부친 충선왕의 ..

고려왕조실록 2021.08.29

고려왕조실록 106 - 충선왕 3

고려왕조실록 106 - 충선왕 3 - 다시 임금은 되었으나 --- 1308년 5월 즉위한 원나라 왕 무종은 자신이 정권다툼에서 승리하자 그간 충선왕이 세운 공이 적지 않았음을 들어 바로 충선왕을 원나라의 영지중 하나인 삼양왕에 봉하여 줍니다. 이로서 충선왕은 원에서도 굳건한 기반을 다질 수가 있었는데, 그해 7월 부왕이 죽자 귀국하여 다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충선왕은 복위하자마자 정치기강의 확립, 조세의 공평, 인재등용의 개방, 공신자제의 중용, 농잠업의 장려, 동성 결혼의 금지, 귀족의 횡포 엄단 등과 같은 조치 들이 담긴 혁신적인 교서를 발표함으로서 다시 한 번 개혁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충선왕의 교서는 일회성 구호에만 그치고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는데 이는 고려의 생활에 적응..

고려왕조실록 2021.08.29

고려왕조실록 105 - 충선왕 2

고려왕조실록 105 - 충선왕 2 - 충선왕의 개혁정치, 폐위, 복귀 충선왕은 왕위에 오르자 세력가들에게 땅을 빼앗겨 소작인으로 전락한 억울한 농민들의 땅을 되돌려 주도록 조치하고, 즉위와 동시에 고려사회에 팽배한 각종 폐단을 개혁하고자 30여 항목의 즉위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주로 합단의 침입 때 공을 세운 자들에 대한 보상과 조세와 부역, 죄에 대한 형벌, 지방에 묻혀있는 선비의 천거 등에 관한 내용이며 별다른 국가에 공헌도 없이 상과 관직을 제수 받은 자에 대한 재조정 등 공평한 상과 벌이 내려지도록 개혁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특수 임무를 띈 별감을 지방에 자주 파견하면서 발생하였던 민폐를 최소화 하도록 지시하였고 뇌물을 금지하고, 특히 홀치, 응방, 아가치 순마 등 원나라의 영향으로 생겨난 ..

고려왕조실록 2021.08.26

고려왕조실록 104 - 충선왕 1

고려왕조실록 104 - 충선왕 1 - 총명한 충선왕,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다 충렬왕의 맏아들로 몽고의 제국대장 공주의 소생이기도 한 충선왕은 1275년 9월 정유일에 태어나서 3세인 1277년에 세자에 책봉 되었습니다. 이름은 장, 자는 중앙, 전 이름은 원, 몽고 이름은 익지례보화입니다. 충선왕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남을 배려함이 각별하였습니다. 그 일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데, 1283년 2월 9살에 불과했던 충선왕은 아버지 충렬왕이 충청도 방면으로 사냥을 나가려하자 갑자기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유모가 까닭을 묻자 충선왕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리 대답했다 합니다. “지금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한데다 농사철까지 다가왔는데 아버지께서는 어찌 멀리 사냥을 나가신다는 건가요?” 측근 신하가..

고려왕조실록 2021.08.26

고려왕조실록 103 - 충렬왕 4

고려왕조실록 103 - 충렬왕 4 - 충렬왕의 몰락 1287년 원나라는 내안의 반란 사건으로 곤혹을 치른 바가 있었는데, 이때 고려에게 원군을 요구한 바도 있었습니다. 이 난은 곧 평정이 되었지만, 1290년 다시 내안군에 소속되어 있던 합단이 지금의 만주지역에서 다시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합단의 군사는 원의 장수 나만대에게 패하여 달아나다가 고려의 동북면으로 방향을 틀어 고려로 침입하여 오게 됩니다. 그동안 원나라의 간섭으로 날이 갈수록 자주적 색채를 잃고 약소국으로 전락해 가던 고려는 합단의 패잔병들에게 마저 대항하지 못하고 삽시간에 많은 땅을 빼앗기게 되고 충렬왕이 강화로 피신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원나라가 1만 명의 원군을 파병하여 이를 진압하여 주지만 거의 1년 반에 걸친 합단의..

고려왕조실록 2021.08.26

고려왕조실록 102 - 충렬왕 3

고려왕조실록 102 - 충렬왕 3 - 고려영토의 회복 그리고 불행의 서곡이 시작되다. 1277년 후반에 고려에서는 고발과 무고 사건이 두 차례 일어난 바가 있었는데, 환관 양선과 태수 장 등이 원종의 제2비인 경창궁주 유씨와 그의 아들 순안공 왕종이 공모하여 승려이자 장남이기도한 종동을 시켜 충렬왕의 수명을 저주하였다고 고발한 것이 첫 번째 사건입니다. 이에 충렬왕은 계모 경창궁주를 폐하여 평민으로 삼고 왕종과 종동을 귀양을 보내버립니다. 이어서 12월 정묘일에 김방경이 역모를 꾀하였다고 대장군 위득유가 고발을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으나 문제는 이전에 몽고에 투항하여 몽고의 고려 침략을 크게 도운바 있었던 홍다구가 귀국하여 김방경을 고문하여 일부러 사건을 크게 확대하여 고려를 난처하게 만듭니다..

고려왕조실록 2021.08.23

고려왕조실록(101) 충렬왕 2

고려왕조실록(101) 충렬왕 2 - 처녀들의 결혼을 금지하다 1275년 임자일, 고려 에서는 원나라의 계속되는 공녀 요구에 전국의 처녀들이 결혼을 하지말라는 혼인금지라는 기절초풍할 조치를 취합니다. 백성의 삶을 풍요롭고 편안하게 해주기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가라 할진데 고려 조정의 이번조치는 스스로 백성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한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마디로 고려 조정은 원나라의 이익과 비위나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정치 조직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원나라는 고려의 내정 간섭을 집요하게 계속해 나갑니다. 같은 달 경술일, 원나라에서는 고려의 전면적인 관제 변경을 요구해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참 기가 막힙니다. ‘고려에서는 여러 왕씨들이 동성 간에 결혼하는데 이것은 도대체 ..

고려왕조실록 2021.08.22

고려왕조실록 100 - 충렬왕 1

고려왕조실록 100 - 충렬왕 1 -원나라의 부마 충렬왕 원종의 뒤를 이은 고려 제25대 임금 충렬왕은 이름이 거 또는 심 또는 춘이라 불렸습니다. 그는 1236년 2월에 원종과 순경태후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일찍이 고종이 죽었을 때 아버지 원종이 원나라에 가 있었던 관계로 고종의 유서에 따라 임시로 국사를 대리한 바가 있었습니다. 1267년 태자로 책봉 되고나서 5년 뒤에 원나라에 체류하게 됩니다. 몽고는 속국에 해당하는 고려의 차후 보위에 오를 태자나 왕족을 본국에 데려다 세뇌교육을 시켜왔는데 말하자면 명색만 다르지 볼모나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원의 세조 쿠빌라이의 딸 제국대장과 혼인을 하게 되는데 이 결혼은 고려 왕실과 원나라 사이에 맺은 첫 번째 혼인으로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

고려왕조실록 2021.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