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129

고려왕조실록 119 - 공민왕 3

고려왕조실록 119 - 공민왕 3 - 심화되는 고려와 원의 갈등. 원의 내부사정과 주변 국가들의 정세를 살피면서 원나라에 빼앗겼던 국권을 되찾고 강력한 배척운동을 전개하기로 마음먹은 공민왕은 1352년 소위 몽고풍이라고 일컬었던 변방, 호복 착용 등과 같은 몽고에서 전례 된 의식을 모두 폐지해 버리고 1356년에는 원의 연호까지 폐지하며 관제마저 문종 시대의 제도로 바꿔버립니다. 뿐만이 아니라 고려조정을 간섭하기위해 원나라에서 설립한 정동행중소성이문소와 쌍성총관부를 폐지해 버리고, 원나라 기항후의 오빠 기철 일당을 숙청함으로서 원의 추종 세력들에게 칼을 들이대기 시작합니다. 또한 원나라에 내어준 북쪽의 영토를 되찾는 등 고려의 자주권과 자존심을 한껏 드높였습니다. 고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

고려왕조실록 2021.10.30

고려왕조실록 118 - 공민왕 2

고려왕조실록 118 - 공민왕 2 - 개혁에 박차를 가하다. 공민왕이 귀국하여 맨 처음 개혁의 손을 댄 곳은 정방이었습니다. 무신정권 시절 최우가 설치한 정방은 인물을 심사하여 적당한 자리에 배치하는 임무를 담당하였으나 권신들이 인사권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등 그 폐단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공민왕은 정방을 폐지함으로서 권신세력을 배척하였으며 정치개혁을 원활하게 시행하기 위하여 문무 관리들의 배치 권한을 전리사와 군부사에 귀속시켰습니다. 이어 곧바로 죄수를 용서할 것에 대한 교서를 내렸는데 이 교서의 내용을 보면 공민왕의 개혁의지를 분명하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는 먼저 퇴폐화 되어가는 풍속을 지적하면서 조정 관리들의 근무자세 쇄신과 서연(書演)에 나올 신하들의 선택방법, 그리고 토지와 노비에 관..

고려왕조실록 2021.10.30

고려왕조실록 116 - 충정왕 2

고려왕조실록 116 - 충정왕 2 - 왜구의 침입과 어린 왕의 죽음 충정왕이 즉위한 후 왜구들이 고려로 몰려와 약탈을 시작하는데 그때가 1350년 2월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왜구 300명을 죽이는 등 쉽사리 그들을 물리쳤으나, 갈수록 왜구들이 빈번하게 침입을 해오자 고려사회는 뒤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워낙 당시 사회가 불안정한 상황이었기에 왜구들이 이틈을 타 대거 몰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때마침 고려내부의 모순을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데, 이는 원나라의 총애를 믿고 고려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내시들의 악행을 폭로하는 방을 써 붙였는데, 그 방을 써 붙인 사람이 다름 아닌 경상도 안렴사로 임명된 최용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덕녕 공주가 이를 알고 그를 파면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대소 관료부터 ..

고려왕조실록 2021.10.30

고려왕조실록 115 - 충정왕 1

고려왕조실록 115 - 충정왕 1 - 비극의 시작 1348년 12월 어린 충목왕이 죽자, 덕녕 공주는 원나라에 충목왕의 죽음을 보고하고 새로운 고려왕의 책봉에 대한 표문을 원나라 왕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충목왕이 병으로 인하여 세상을 떠났다. 온 나라가 애통해 할 뿐만이 아니라 왕의 나이가 어리어 후손이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 귀순하지 않은 일본과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임금이 없으면 안 될 것이다. 이제 왕기(공민왕)는 보탑실리왕(충혜왕)의 동복 아우로서 이전부터 귀국에 가서 입시하고 있었던바 있었으며 나이 19세이며, 왕저(충정왕)는 충혜왕의 서자로서 현재 본국에 있는바 나이 12세이다. 이런 일의 결정은 당신의 마음에 달렸으니 우리 백성의 소원을..

고려왕조실록 2021.10.30

고려왕조실록 114 - 충목왕

고려왕조실록 114 - 충목왕 - 덕녕공주의 섭정, 어린왕의 죽음 온갖 악정이란 악정은 골라가며 해대던 충혜왕이 원나라로 압송되어 귀양길에 죽음을 맞이하자, 당시 충혜왕과 함께 원나라에 끌려가 머물고 있던 왕자 ‘흔’이 왕위를 잇게 되니, 그가 바로 고려 제29대 왕인 충목왕입니다. 충목왕은 이름은 ‘흔' 몽고이름은 ‘팔사마타아지’로, 선왕 충혜왕과 원나라 덕녕공주의 소생으로 장자로 태어났습니다. 1344년 2월 정미일, 고령보가 충목왕을 안고 원나라 왕을 만나러 갔습니다. 자질이 총명하고 지혜가 많은 아이로 소문난 충목왕을 가만히 바라보던 원나라 왕이 물었습니다. “네가 장차 아비를 본받으려는가? 아님 어미를 본받으려는가?” “어미를 본받으려 합니다.” 충목왕이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원나라 왕은 선한 ..

고려왕조실록 2021.10.30

고려왕조실록 113 - 충혜왕 4

고려왕조실록 113 - 충혜왕 4 - 기고만장 충혜왕 그리고 죽음 원나라로 압송된 충혜왕은 신하들과 힘께 심문을 받는 등 고초를 당하게 되지만 1340년 3월 탈탈대부의 도움으로 다시 고려왕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이는 당시 충혜왕 이외에는 고려를 이끌만한 인물에 대안이 없어서 그러한 결정이 내려진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됐던 다시 고려로 돌아온 충혜왕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체통에 말이 아닌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예전보다 더 기고만장하여 정사는 내팽개친 채 사냥과 음주, 음탕한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재물을 탐하여 백성의 토지와 노비를 강탈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백성들을 함부로 죽이는 등 임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행위를 서슴치 않고 행하..

고려왕조실록 2021.10.30

고려왕조실록 112 - 충혜왕 3

고려왕조실록 112 - 충혜왕 3 - 계속되는 음란행위 충혜왕이 즉위한 그해 5월 초하루 자신의 장인 삼사좌사 홍융의 집을 방문한 충혜왕은 장인의 후처인 황씨를 강간하는 큰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술자리가 거나해지자 충혜왕은 주위를 모두 물리치고 황씨 만을 남아있게 하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강제로 범해버린 것입니다. 기절초풍할 일이었습니다.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비 충숙왕의 후비인 수비 권씨를 또 음간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서모를 성적 노리개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긴 임금은 만인의 어버이요 주인일진데 어미인들 장모인들 다 자기 마음대로라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충혜왕의 음행은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는 내시 유성의 처인 인씨가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대신..

고려왕조실록 2021.10.30

고려왕조실록(72) 명종 5

고려왕조실록(72) 명종 5 * 다시 바뀌는 무신정권의 주인. 이의방이 죽고 그 측근 세력들도 거의 정리가 되면서, 이제 모든 권력은 정중부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는 문하시중이 되어 문관과 무관을 통털어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게는 되었으나, 이의방을 죽인 명분을 얻기 위해, 전에 이의방에게 살해된 의종의 국상을 반포하고 의종을 고려 제18대 왕으로 복귀 시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고려 정국은 다소 안정을 찾아 가게 됩니다. 정중부, 정균, 송유인 등은 의종이 건설했던 궁궐들을 하나씩 차지하여 자기 집으로 삼는 등 안하무인인 점도 있었으나, 대체로 온건한 정치를 펼쳤으며 왕실이나 문신들과도 화해하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명종에게도 어느 정도의 권한을 보장해 주었고, 정변 이래 유명무실해져 있던 과거를..

고려왕조실록 2021.09.14

고려왕조실록 111 - 충혜왕 2

고려왕조실록 111 - 충혜왕 2 - 반쪽짜리 왕의 등극 “원나라 조정에서 우리 고려에 장차 행성을 설치할 것이라 합니다”라고 김천우가 고합니다. 행성이란 간단히 말해서 식민지를 지배할 때 식민지에 직접 통치기구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일제시대의 총독부와 같은 기구를 고려 조정 내에 설치하여 모든 조정의 업무를 직접 관장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원나라가 고려로 하여금 일본 정벌을 준비시키기 위해 설치했던 정동행성이 오로지 일본 정벌에 필요한 함선의 제작이나 군량미 조달, 군사의 징벌 등에만 국한하여 직접 관장 하였으나 장차 설치하고자 하는 행성은 고려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직접 원나라가 관장을 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충혜왕은 원나라 태사 우승상 여첩목아에게 서한을 보내 행성의 설치를..

고려왕조실록 2021.09.01

고려왕조실록 110 - 충혜왕 1

고려왕조실록 110 - 충혜왕 1 - 연산군이 형님이라 할 만한 폭군의 탄생 조선 천지를 피로 물들이며 주색과 방탕, 악정을 거듭한 끝에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연산군의 생애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산군 못지않게 악행을 행하였던 인물이 고려시대에도 있었으니 그가 곧 고려 28대왕 충혜왕입니다. 일국의 왕으로 원나라에 끌려가 귀양살이를 떠나던 중 독살된 것으로 알려진 충혜왕.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접한 고려 백성들은 그의 학정에 얼마나 신음하였던지 기뻐서 날뛰며 이제 다시 갱생의 날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소리소리 질러댈 정도였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남의 나라 땅에서 귀양살이를 하러 떠나던 중에 죽은 자신들의 왕을 비꼬는 노래가 백성들 사이에 유행을 했겠습니까. 만백성의 아버지라는 ..

고려왕조실록 2021.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