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89

<조선왕조실록(142)> 헌종 철종 8 - 씨가 마르다!!!

헌종 철종 8 - 씨가 마르다!!! 아편전쟁과 그 이후의 중국에 관한 소식은 간간히 사신을 통해 조선에 전해졌습니다. 대단히 제한적이고 단편적인 정보였지만 그 내용 자체가 충분히 충격적인 것들이어서 조선 조정이 술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황제가 열하로 피신을 했다고? 진짜? - 저들이 얼마나 세길래 중국이 붙었다 하면 깨진단 말인가... 1860년(철종 11년)에는 일본이 미국, 러시아 등과 강화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조선에도 이양선의 출현이 더욱 빈번해졌습니다. 아직까지 별 탈 없이 넘어갔지만. 조만간 더 강력한 외세의 접근이 있으리라는 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예를 보아도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조선 조정의 대비는 보이지 않습니다. 개항에 대한 고려도, 척사에..

조선왕조실록 2021.05.30

<조선왕조실록(141)> 헌종 철종 7- 아편전쟁과 중국의 굴욕(2)

헌종 철종 7 - 아편전쟁과 중국의 굴욕(2) 중국의 아편 강경책은 성공한 듯 보였지만, 중국도 임칙서도 영국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영국은 산업혁명과 식민지 경영을 통해 한껏 힘을 키운 상태로서, 중국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 우리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야! 영국은 중국의 갑작스런 위협에 못 이겨 아편을 내어 놓기는 했지만, 곧바로 군함 2척만으로 중국 병선 29척 중 26척을 박살내었고, 더 나아가 싱가포르에 주둔하고 있던 군함 16척을 중국으로 발진시키는 강수를 두었습니다.(1840년)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던 중국인의 오랜 확신이 무너지는 아편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주산군도를 손쉽게 함락하고 천진 앞바다까지 북상한 영국 함대에 중국 조정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조선왕조실록 2021.05.30

<조선왕조실록(140)> 헌종 철종 6- 아편전쟁과 중국의 굴욕(1)

헌종 철종 6 - 아편전쟁과 중국의 굴욕(1) 중국은 강희제에서 건륭제에 이르는 130여 년간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그동안 서양은 지리상의 발견, 프랑스대혁명, 산업혁명까지 격변의 세월을 거치며 역사상 유례가 없는 힘을 키웠습니다. 반면 중국은 건륭제 후반기에 이르러 황실과 관리들의 사치가 심해지고 부정부패가 뒤따랐습니다. 이에 민중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고 백련교도의 난 등 내부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즈음 중국 조정을 괴롭히는 중대 현안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아편이었습니다. 영국은 1715년부터 중국과 제한된 범위에서 교역을 하고 있었는데 중국의 수출품인 생사, 차, 도자기 등의 인기가 매우 높아 영국의 은이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영국은 이러한 심각한..

조선왕조실록 2021.05.30

<조선왕조실록(139)> 헌종 철종 5 - 민란의 시대

헌종 철종 5 - 민란의 시대 1862년(철종 13년) 2월 29일, 경상 감사 이돈영이 급보를 올렸습니다. - 진주에서 난민들이 병사를 협박하고 인명을 불태워죽였습니다. 진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경상 우병사 백낙신은 병영 경비를 착복하고, 이를 백성에게서 거둬 충당하려 했습니다. 이들은 백성이 배당금을 냈더라도 이웃이 내지 못하면 다시 와서 털어갔고, 몰락한 양반들에게도 가차 없이 수탈을 가하였습니다. 참다못한 몰락한 양반과 초군(땔감, 약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앞장서서 집회를 열었고, 가혹한 수탈로 벼랑에 몰린 백성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그 수가 불어나면서 군중의 기세가 드높아졌습니다. 성난 군중은 그 길로 악질 토호(지방에서 세력을 바탕으로 양반행세를 할 정도로 힘을 ..

조선왕조실록 2021.05.30

<조선왕조실록(138)> 헌종 철종 4- 삼정(三政)의 문란

헌종 철종 4 - 삼정(三政)의 문란 19세기 조선의 농민이 부담한 세금은 주로 농토에 부과된 전세와 군포, 양곡 대여 정책인 환곡(還穀)이었는데, 이를 삼정이라고 합니다. 당시의 조선 사회는 지배 체제의 문란으로 세금 수취 체제가 심각할 정도로 문란해져 있었습니다. 세금의 항목과 액수는 법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관리들은 새로운 항목을 만들어 정해진 양의 몇 배 이상을 거두었는데, 특히 삼정과 관련된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백성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전정은 잡다한 세금의 명목과 징수로 인하여 농민의 원성을 샀고, 군포는 군역의 부당한 부과 방법이 결국 행정적 횡포로 이어졌으며, 환곡은 정부 대여곡의 대여와 환수를 둘러싼 지방 관리들의 농간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 단면을 보여주는 정약용의 시..

조선왕조실록 2021.05.30

<조선왕조실록(137)> 헌종 철종 3-권력세도정치! 안동김씨

헌종 철종 3 -권력세도정치! 안동김씨 1849년 6월 9일 강화도령 철종이 19세의 나이로 조선 제25대 임금으로 등극하였습니다. 임금이 정치를 모르는 문외한이니 부득이 궁궐의 어른인 대왕대비(순원왕후)가 또 다시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습니다.(두 번의 수렴청정은 조선왕조 유일무이) 친정(안동김씨)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순원왕후는 철종에게 간곡한 언문 하교를 내리고 동생 김좌근, 그리고 4촌 관계인 김홍근 등을 중용하여 정치를 펴 나갔습니다. 헌종 말 몇 년 동안 헌종의 견제에 적잖은 위기감을 느꼈던 안동김씨 일문에게 헌종의 때 이른 죽음과 순원왕후의 2차수렴은 행복한 사태의 반전이었습니다. 철종의 비는 세간의 예상대로 안동 김씨 김문근의 딸로 결정되었습니다. 순원왕후가 여기에 반대의사를 내비췄다고 ..

조선왕조실록 2021.05.30

<조선왕조실록(136)> 헌종 철종 2- 강화도령 원범 왕이 되다!

헌종 철종 2 - 강화도령 원범 왕이 되다! 헌종 시대는 1834년부터 1849년까지의 시대로서, 헌종은 8세에 왕위에 올라 23세라는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두게 됩니다. 서양 세력이 근대화를 이룬 후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중국과 조선 등 동쪽을 향해 진격해 오는 한편, 바다 건너 일본마저 변화의 길에 들어선 이즈음의 조선 헌종 시대는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을 정도로 한 게 없었습니다. - 앞서 본 것처럼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고, 천주교를 박해하였다. - 순원왕후의 친정인 안동김씨 가문이 권력을 틀어쥐었고, 그 와중에 일찍 죽은 헌종의 아비 효명세자의 부인의 친정인 풍양조씨가 안동김씨에 맞서기도 했으나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다. - 헌종이 친정을 하면서 풍양조씨를 활용하는 등 안동김씨를 견제하..

조선왕조실록 2021.05.30

<조선왕조실록(135)> 헌종 철종 1-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헌종 철종 1-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1834년 순조의 뒤를 이어 손자 헌종이 새로 즉위하였으나 그 나이가 여덟에 불과하여 대비인 순조 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맡게 되었습니다. 순원왕후는 명문가 중의 명문가라는 안동김씨의 딸로서, 그 아비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왕실의 큰 대우를 받은 김조순이었습니다. 비록 김조순이 죽고 없으나 순원왕후의 오라비들과 조카가 안동김씨의 영역을 강하게 구축중이었으므로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순원왕후는 일찍 죽은 헌종의 아비인 효명세자를 왕으로 추승하였고, 이어서 당연히 효명세자의 비 조씨는 왕대비로 격상되었습니다. 순원황후는 왕대비 조씨의 아비 조만영을 호위대장에, 그의 동생 조인영을 이조판서에 앉히는 등 풍양조씨를 배려했고, 반남박씨도 우대했습니다. 독식하려다가는 다 죽는다..

조선왕조실록 2021.05.30

<조선왕조실록(134)> 순조 5 - 외세의 해일

순조 5 - 외세의 해일 벽파의 득세와 시파의 축출, 다시 그 반대의 상황 등 모든 과정을 지켜 본 순조는 청년기를 지나면서 어린 시절 총기와 큰 뜻을 잃고 맙니다. 순조는 더는 그 혼탁한 정치의 세계로 들어가려하지 않았는데, 영조나 정조처럼 당파의 힘을 키웠다 죽였다 하면서 정국을 조절할 탕평의 길을 갈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순조는 중요한 정치적 판단, 결정을 비변사에 모두 맡기고 정치 중심에서 한 발 뺀 채 민생이나 과거제도 개혁 등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조정을 틀어쥐지 못한 채 벌이는 일들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습니다. 순조는 체격이 크고 건장했지만 즉위 10년 즈음부터 자주 병에 시달렸고, 순조 20년 즈음부터는 경연도, 신하들을 불러 일을 보는 것조차 뜸해지니, 급기야 영의정 김재찬이 ..

조선왕조실록 2021.05.17

<조선왕조실록(133)> 순조4 - 세도정치의 시작

순조4 - 세도정치의 시작 세도정치는 특정가문이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순조 이후의 정치형태로서, 특정 가문의 위세가 당파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당파정치와는 구별됩니다. 또한 세도정치의 주체는 왕가와 혼인관계로 이어진 척신 가문으로서, 이런 점에서 세도정치의 조짐은 영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영,정조 때 홍봉한, 김귀주, 홍국영 등의 척신이 권력을 잡기는 했으나, 이 때의 척신들은 영조나 정조의 카리스마에 눌렸다는 점과 순조 이후의 세도정치에는 벽파니 시파니 하는 당파적 색채가 소멸되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다르다 하겠습니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순조가 친정을 시작하면서 집권한 노론 시파는 벽파를 사실상 궤멸시켜버렸는데, 이러한 시파의 중심에는 안동김..

조선왕조실록 2021.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