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 3 - 홍경래의 난 1811년 12월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평안도 가산에서 일군의 무리들에 의해 저항의 기치가 올려졌습니다. 그 중심에 평서대원수라 불리던 나이 마흔의 홍경래가 있었습니다. 홍경래는 일찍이 평양 향시에 합격한 뒤 한양으로 올라와 대과에 응시했다가 낙방했습니다. - 내 그럴줄 알았다. 합격자는 죄다 한양 권세가의 자제들. 썩어빠진 세상이다. 홍경래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벗을 사귀고 뜻 맞는 이를 구했는데, 제일 먼저 가산 땅에서 서자 출신의 인텔리인 우군칙과 의기투합했습니다. 이어 대부호인 이희저를 끌어들이고, 인근의 부자, 지식인 장사들을 규합해 무기를 마련하고 가산의 다복동에 지휘부를 차려 은밀히 준비하더니, 이윽고 일어났습니다. - 3년째 흉작인데다 역병까지 겹쳐 유랑자가 산천에 ..